최근 한 취업포털(JOBKOREA)이 우리나라 직장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직장 선호도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0.8%가 `저녁 시간과 휴일이 보장되는 직장`을 꼽았다. 요즘 말로 `워라밸이 좋은 직장`을 선호한 것이다. 이처럼 임금이나 복지수준보다 휴식이 있는 삶을 우선하는 응답자가 많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암시하는 바가 크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이 2052시간으로 전체 회원국 중 2위를 차지했다. OECD 평균보다 무려 300시간이나 많다. 이로 인해 게임업체, 로펌, 연구소 등 야근이 특히 많은 업종에서는 과로사까지 발생하는 실정인데 지금 껏 근본적 해결책은 마련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과연 `야근 왕국`의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인해 주당 최장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크게 줄어들게 된다. 법에 `1주는 7일`임이 명시돼 생기는 변화다. 개정 전에도 법정 근로시간은 동일했지만, 1주를 5일로 해석함에 따라 주말 2일 동안 16시간이 추가로 인정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7월 1일부터는 이 16시간이 불인정 돼 근로시간 상한기준이 바로잡히게 된 것이다.

14년 전 우리는 주 5일제를 도입한 경험이 있다. 당시, 시행일보다도 먼저 근무체계를 개편하는 기업들이 있는 한편, 인건비와 설비투자비 부담을 이유로 개편을 보류했던 기업들도 있었다.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이번 근로시간 단축은 이때의 데자뷔(deja vu)다. 매우 비슷한 문제에 다시 직면했지만, 우리에겐 이미 이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사회적 자산이 있으므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워라밸`(일·가정 균형)을 공동의 목표로 삼아 일자리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재직자는 야근에서 벗어나 저녁이 있는 삶을 되찾고, 이로 인해 발생되는 새로운 자리에서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의지를 모아야 한다. 이번 기회에 노사 양측이 머리를 맞대고 상호 생산적인 일터 혁신 방안을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정해진 52시간의 큰 틀 안에 세부적인 룰을 함께 설계하는 과정부터 노사가 함께 참여하여 상생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로시간 단축에서 발생되는 비용 부담이 큰 기업이라면,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관계부처 합동 발표에 의하면, 신규채용 인건비와 재직자 임금감소분 지원부터 공인노무사의 일터혁신 컨설팅까지 모든 과정에 대한 후속 대책이 마련됐다고 한다. 나아가 법 시행에 앞서 선제적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모범 사업장에는 설비투자비 융자 지원, 공공조달 입찰 우대 등의 혜택도 제공된다. 버스기사의 졸음운전과 그로 인한 승객들의 사망 소식에서 보듯, 장시간 노동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해치며 적잖은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장시간 노동은 가임기 기혼여성의 첫 아이 출산 결정을 늦추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장시간 노동은 우리나라의 국민행복지수를 낮추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가 장시간 노동을 탈피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따라서 기업의 노측과 사측은 이러한 국민적 요구를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최근 입법화된 근로시간 단축 정책이 노동자들에게는 휴식이 있는 삶을, 청년들에게는 더 많은 일자리를, 기업에게는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허찬영 <한남대 경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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