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의 도시 가이드 [제프 마노 지음·김주양 옮김/열림원/ 352쪽/ 1만 5000원]

도둑의 도시 가이드
도둑의 도시 가이드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읽을거리가 가득한 책에서 저자는 2000년 동안 이어진 건물침입의 역사를 아우르며 기존의 건축가, 건물주, 거주민의 시각으로 바라본 건축 이야기에서 벗어나 도둑, 경찰, 건물관리인, 보안전문가 등 숨은 전문가들의 시선으로 도시의 이면을 재조명한다. 지켜야 할 조용한 거리와 빈집 들이 없었다면 경찰들이 우리 도시에 필요했을까. 도시의 규율과 제도가 침입절도와 결합한 끝에 경찰과 도둑이 서로 쫓고 쫓기는 진화하는 추격전이 만들어졌다. 이 진화야말로 수 천 년에 걸친 도시 발전의 역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훔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눈으로 건축을 탐구하며 저자는 독자들을 벽 속으로, 패닉룸으로, 지붕으로 이끌며 도시를 안내한다. 독자들은 저자의 풍부한 지식과 자료, 열정 가득한 안내를 따라 생전 가본 적 없는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게 된다. 스릴 넘치는 통찰이 가득한 이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독자는 지금껏 생활해온 도시와 건물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경찰과 도둑의 상상력 속에서 도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실현할 수 있는 무수한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도둑들은 건축의 정사(正史)에 들어가지 못한 일탈적 존재이면서도 건축물 자체만큼이나 오랫동안 건축이라는 이야기를 구성해오고 진화시켜온 필수 요소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떻게 사용돼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는 이미 건물에 내재돼 있다. 우리가 기도 모임을 주차장에서 갖지 않고 교회에서 소에게 여물을 먹이지 않듯이, 건물마다 요구하는 특정 행동 방식이 있다. 때로 그 요구는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은근해서 우리가 그 질서에 순응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할 때도 있다. 우리는 건축적 관습에 얽매여 벽을 벽으로 받아들였고 통로가 안내하는 대로만 지나다녔다. 제프 마노는 전혀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현상과 사건을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자료 조사를 통해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숨겨져 있는 의미의 비밀통로로 독자들을 이끈다. 이 힘으로 무엇을 할지는 우리의 선택이다.김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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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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