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다소 충격적인 제목으로 이목을 끌었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는 좀비물이 아닌 청춘멜로 드라마였지만, 이 영화 제목을 통해 새삼 우리 몸에 `췌장`이라는 장기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비록 위(胃) 뒤쪽 구석에 위치하며, 존재감 면에서도 오장(五臟)에 크게 밀리지만, 이곳은 혈당관리를 위한 인슐린 호르몬을 분비하고 씹지도 않고 넘긴 탄수화물을 소화시키는 등 일종의 병원 응급센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췌장`의 재발견이다.

`현금 없는 사회`가 이슈가 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이제 한국조폐공사는 할 일이 없어지나요?"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 공사가 사업의 특성상 지나칠 정도로 보안을 강조하느라 회사에 대한 홍보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또 한편으론 `조폐공사`하면 화폐만 떠올릴 정도로 공사가 만드는 다양한 다른 제품에 대해서는 국민의 기억에 남을만한 사건 사고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약간의 뿌듯함도 느낀다.

조폐공사는 은행권, 주화뿐만 아니라 만 17세가 되면 발급받게 되는 주민등록증, 대학생이 돼 생애 처음으로 떠난 유럽 배낭여행 중 동방의 작지만 강한 나라에서 온 선량한 여행자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증표인 여권,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가문의 자랑거리가 되어 목에 걸게 된 공무원증 등 평생을 살면서 진짜가 아니거나 위변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많은 중요한 것들을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조폐(造幣)`로 다져진 세계 최고 수준의 위변조방지 역량을 기반으로, 특별한 날 소중한 분께 드리는 선물로 인기가 높은 홍삼, 화장품, 지역 특산품 등을 더욱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정품인증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감사하는 마음에 격(格)을 더하고 있다.

1951년 설립 이래 근 70년 동안 조폐공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조폐`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조폐`는 단순히 은행권과 주화의 `제조`가 아니라, 화폐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거래 자체에 신뢰를 부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팔면서 주고받는 천 원짜리가 천 원의 가치를 지닌 진짜 지폐라는 믿음이 없다면 거래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적인 거래 방식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국민들이 안심하고 경제적·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 거래에 신뢰를 부여하는 것도 `조폐`의 역할이다. 조폐공사는 디지털 시대에도 믿음직스럽게 그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시계 산업이 정밀기계 산업으로 출발해 패션 산업, 명품산업으로 시대의 변화에 맞춰 진화한 것처럼 우리 공사도 국민의 재산상·신분상 가치를 보호함으로써 신뢰사회 구축에 기여한다는 본질에는 변함없이, 화폐 및 국가 신분증 등을 제조하는 기업에서 조폐·인증·보안을 아우르는 종합 신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으로 업(業)의 진화를 이루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다가올 2030년에는 가장 혁신적인 공기업, 2030 세대가 가장 일하고 싶어 하는 공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은영 한국조폐공사 전략기획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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