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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5기사 편집 2018-06-25 18: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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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맹주, 협상가, 정치 9단, 2인자, 킹메이커, JP…'

정치권이 지난 23일 92세의 나이로 타계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가리켰던 별칭들이다. 거동은 불편했지만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총기가 좋았던 김 전 총리는 서울 자택을 방문하는 정치권 인사들을 향해 조언을 하고 현안에 대한 따끔한 비판도 마다하지 않았다. 직설적이면서도 절제된 발언들로 현실 정치에 화두를 던지는 그의 정치력은 굴곡 있는 삶에서 비롯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엮여 있었던(처삼촌과 조카사위) 김 전 총리는 35세 젊은 나이에 5·16쿠데타에 가담하면서 한국 정치사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후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초대 부장으로서 권력 정점에 올라서게 됐지만 그의 정치 역정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민주공화당 창당 과정에서 김 전 총리 등이 불법적인 자금을 전달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첫 번째 외유를 떠나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은 2인자로 김 전 총리를 곁에 두면서도 언제든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의심을 품으며 견제했다. 김 전 총리의 측근들 역시 감시는 물론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혹독한 취조를 당하기도 했다.

전두환 신군부에서도 김 전 총리의 고초는 계속됐다. 부정축재자로 낙인 찍혀 해외 생활을 이어가던 김 전 총리는 1987년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해 충청권에 기반을 잡게 된다. 김 전 총리는 창당 직후 총선에서 35석을 차지, 충청의 맹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3당 합당과 탈당, 자민련 창당 등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더욱 굳히게 됐다. 특히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총선에서 잇따라 승승장구하면서 제3당으로서의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을 잡고 DJP연대를 이뤄내 킹메이커라는 별칭도 얻게 된다. 김 전 총리의 굴곡진 정치사를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중요 사건과 연결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물론 5·16쿠데타에 일조하고 지역감정을 등에 업고 정치적 입지를 넓혔다는 등의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인생과 정치경력 등은 국민 개개인이 판단하면 될 일이다. 지금은 충청 출신 정치인으로서 활동한 구순 넘은 노병의 죽음을 애도할 때가 아닌지 싶다. 3년 여 전 김 전 총리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고향인 충남 부여 가족묘에서 부인의 영정사진을 보며 눈물 흘리고 애통해했던 그 모습이 눈에 아른 거린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인상준 서울지사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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