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시대 이끈 역사 주역 한일수교 정상화 ·지역 세력화 부여 출신 충청대망론 원조

충청의 정치 거목(巨木)이자 한국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김종필(호: 운정(雲庭)) 전 국무총리가 23일 영면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한국 현대사를 주도했던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등지면서 `3김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리지게 됐다. 충청으로선 지역을 기반으로 한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도모했던 충청대망론의 원조이자 큰 별이 진 것이다.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의 대표적 개국공신인 그는 역사의 큰 굴곡마다 흔적을 남겨 한국 정치 풍운아로 불린다. 박정희 정부 중앙정보부장을 맡아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데 이어 정치적으로는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며 역대 최다선인 9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968년에는 만 45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국무총리에 올랐고, 자민련 총재를 맡아 정국을 주도하기도 했다.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정부에서는 내치 전반의 실권을 쥔 총리를 맡기도 하는 등 40여 년간 정치 현장에서 한국 현대사를 써내려갔다. 외교적으로는 한일수교 정상화의 장본인이다. 5·16에 대한 평가와 군사 정부에서의 역할 등을 근거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한국의 산업화와 정치 민주화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점은 모든 진영에서 인정하는 바다.

특히 1992년과 1997년 두 번의 대선에서 각각 야당 지도자였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함으로써 민주정부 출범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7대 총선에서 10선 도전에 실패한 뒤 정계를 은퇴했지만, 이후에도 훈수정치를 통해 한국 정치사에 직간접적으로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쳐왔다. 대권의 꿈을 품고서도 `영원한 2인자`로 살아야 했던 그는 정치 9단으로서 내각제를 주창했지만, 이 역시 끝내 관철시키지 못한 한국 현대정치사의 풍운아로 평가된다.

충남 부여출신으로 공주중·고를 졸업한 그는 명실상부한 충청의 맹주로 기록된다. 1997년에 치러진 대선에서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공동정부를 탄생시켜 충청의 정치위상을 높였으며,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해 충청의 독자적인 정치결사체를 모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총선에서 역사적인 10선 도전에 실패했고, 총재직 사퇴와 함께 정계를 은퇴하며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퇴진 후에도 정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쉽게 약화되지 않았다. `포스트JP`를 노리는 충청출신 정치인들은 물론 보수층을 품으려는 기존 정당 지도부들에게 훈수정치를 통해 정세를 논했다. 이 같은 훈수정치는 충청의 정치인재를 간접적으로 지원해 결국 폭 넓은 차기 충청맹주를 키우는 효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김 전 총리의 이 같은 공적 등을 기려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할 방침이다.

한편 김 전 총리의 장례는 오는 27일 발인 전까지 5일간 치러지며, 충남 부여 외산면 반교리 가족 묘역에서 지난 2015년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박영옥 여사와 합장될 예정이다.

서울=송충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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