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92) 전 총리가 작고함으로써 3김 시대, 3김 정치의 주인공이었던 김대중·김영삼·김종필 트로이카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김 전 총리는 2009년 별세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2015년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1970년대부터 2000년 대까지 시대를 풍미했다.

3김은 YS(김영삼),DJ(김대중), JP(김종필)란 애칭으로 불렸다. 이들의 정치 행보는 비슷하지만 달랐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군부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야당 정치인이었지만 김 전 총리는 박정희 정권의 후계자를 꿈꿨다.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공주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그해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3김 시대의 한 축인 김 전 총리는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현대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했으며, 같은 해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초대부장에 취임한 것을 시작으로 줄곧 영원한 `2인자의 길`을 걸어왔다.

공화당 창당 과정에서 증권파동을 비롯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에 휘말리면서 1963년 2월 `자의반 타의반` 첫 외유를 떠난 데 이어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의 주역으로서 핵심쟁점이던 대일 청구권 문제와 관련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으로 6·3사태가 일어나자 1964년 또다시 2차 외유길에 올랐다.

이후 1971년부터 1975년까지 4년 6개월 간 국무총리를 지내며 승승장구했으나, 1980년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몰려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다.

김 전 총리는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유랑생활을 하다 1986년 귀국한 뒤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1987년 13대 대선에 출마해다가 낙선했다. 그러나 1988년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35석의 국회의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 오뚝이처럼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그는 이어 내각제를 고리로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YS) 당시 대선 후보를 지원했으며, 1997년 대선에선 자신이 창당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다시 대권에 도전했으나 선거 막바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성사시키며 김대중(DJ) 당시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함께 국민회의·자민련 공동정권을 탄생시켰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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