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별세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말 그대로 풍운의 정치인이었다. 5·16으로 한국 현대정치사에 혜성처럼 등장한 뒤 영원한 2인자의 길을 걸었지만 산업화의 주역으로서 대한민국 발전을 이끌었다. 한편으론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경쟁하고, 협력하는 3김 시대의 한 축으로서 한국정치 발전에 기여했다.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싶다"며 평생의 꿈인 내각제 실현에 혼신을 다하다가 인생 역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고인 만큼 공과가 엇갈리고, 영욕과 부침을 겪은 인물도 드물다. 두 차례 국무총리를 역임했고, 9선 국회의원을 지내는 등 화려한 길을 걸었지만 `자의반 타의반` 정치 현장을 떠나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13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오뚝이처럼 복귀해 3김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1997년 대선에선 자신이 창당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대권에 거듭 도전했다가 막판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성사시키며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함께 자민련·국민회의 공동정권을 탄생시켰다. 보수정객으로 활약하며 입버릇처럼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말했지만 의회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몸 바친 것도 JP였다. 반면 유신정권 등 독재에 참여하고, 지역주의 조장 같은 부정적 유산을 남겼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남긴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JP의 타계 소식에 만감이 교차하는 충청인이 적지 않을 것이다. 충청대망론의 원조이자 상징으로서 초지일관 내각제 소신을 지킨 것은 충청만의 차원을 넘어 분권과 균형 발전에 대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포스트 3김 시대에는 충청이 중심이 돼 민생과 분권의 정치가 펼쳐지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정치권도 JP가 남긴 `협치의 리더십`으로 실사구시를 구현하기 바란다. JP의 공은 공대로 평가하면서 과를 극복하고 승화시키는 게 오늘의 정치가 할 일이다. 다시 한번 고인의 영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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