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서라도 마차를 끌 수 있으면 좋겠다. 난 다시 장사를 시작해야 돼." 극작가 B.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에서 억척어멈의 마지막 대사이다. 전쟁으로 자식 셋을 모두 잃었지만 군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전쟁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비정한 어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17세기 독일지역을 대부분 초토화시켰고,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30년 전쟁`이다. 지독하게 잔혹했던 이 전쟁은 영토와 왕조의 세력다툼이 주 원인이었지만, 전쟁을 뜨겁게 달군 것은 종교적 신념 때문이었다. 결국 `개신교와 가톨릭에 관계없이 자신을 다스리는 왕이 선택한 종교를 믿는다`는 조약으로 전쟁은 종결되지만, 종전의 결정적 요인은 신성한 영혼에 가치를 두는 태도에서 생명에 가치를 두는 이성의 시대로의 변화였다.

전제적 폭정과 전쟁의 근원은 상당부분 인간의 명예심과 관련된다. 셰익스피어는 `헨리 4세`에서 주인공 폴스타프의 입을 빌려 명예심에 대해 분석한다. 헨리 왕자가 "자네는 신에게 죽음을 빚졌네"라고 말하며 전투에 나갈 것을 종용하자, 폴스타프의 생각은 다르다. 신이 독촉도 하지 않았는데 미리 빚을 갚을 이유가 없으며, 다만 그의 마음이 찔리는 것은 명예 때문인데, 그깟 명예란 놈이 잘려나간 그의 다리를 도로 붙여줄 리도 없고, 명예란 고작 묘비에 새겨질 비문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전쟁의 헛됨을 셰익스피어는 풍자라는 소외효과를 통해 사람들에게 사회의 위선과 그것을 북돋은 인간 본성의 결함을 깨닫게 한다.

J.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우리의 관점을 전환시키는 전형적인 작품이다. 궁전에 화재가 났을 때 오줌을 갈겨 불을 끈 일로 왕실에 대한 무례를 범해 소인국에서 쫓겨난 걸리버는 다시 거인국으로 들게 되고, 상대적으로 작아진 걸리버는 거인국 왕에게 고국, 영국의 역사를 들려준다. 이에 거인국의 왕은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몇 마디 던진다. "자네가 내게 해준 답변들을 참고하자면, 자네 고향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이 지구 표면에 살게 해준 작은 해충들 중에서도 가장 악독한 종자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군." 우리에게 거인이라는 동화적인 인물로 익숙한 걸리버는 탐욕, 파벌, 배반, 광기, 학살과 같은 악덕으로 만연한 세상에 맞서는 인물로서, 그는 거인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여행가이다.

I. 칸트는 어느 여관 간판에 적혀있던 문구에서 착안하여 에세이 `영구 평화론`을 썼다.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자연스런 상태가 아니다. 전쟁이 자연스런 상태이다. 따라서 우리는 평화 상태를 의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칸트는 영구 평화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자유, 평등, 법치에 헌신하는 민주정부이다. 전쟁의 이득은 지도자들에게 돌아가지만 그 대가는 국민들이 치르게 되기 때문에 민주국가는 전쟁을 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모든 나라의 법률은 국제법에 기초해서 제정되어야 한다. 이 법은 국가 간에 분쟁이 일었을 때 제삼자로서 합리적 방안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셋째, 세계 시민권이다. 국경을 넘어서도 시민의 권리를 침해받지 않기 때문이다.

칸트가 심은 영구 평화론의 씨앗 때문이었는지, 나라마다 지도자들은 평화를 사랑한다고 공언해왔지만 200년이 흐른 지금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70년간이나 휴전상태인 6.25 전쟁은 남과 북에 군비경쟁을 부추겨 평화를 위협하고 있으며, 창의적이고 미래적인 인재로 나아갈 젊은이들이 소중한 20대를 국방의 의무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낼 만큼 똑똑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 위대한 과학자, 뉴턴도 어느 편지글에서 "내가 좀 더 멀리 보는 것은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탔기 때문이다"라고 시인한바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튼튼한 어깨를 가진 거인들은 세상도처에 있다. 역사적으로 `해가지지 않는` 불멸의 제국, 영국도 오만한 고립으로 한때 패권에서 밀린 적이 있다. `영광스런 고립`이란 없다. 이미지 변신을 적극 꾀해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탈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가까이 다가온 평화의 세상을 볼 수 있다. 영구 평화론을 주장했던 칸트는 이성의 위력을 믿고, 계몽에 대한 정의도 내렸다. "현명해지도록 하라! 자기 자신의 이성을 스스로 사용하려는 용기를 가져라!"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고, 휴전선의 남북정상 간의 대화가 싱가포르 북미대화를 이끌어 한반도 평화 정착의 단단한 기초를 닦은 달이다. 이제 다시 생명에 가치를 두는 이성과 평화의 시대가 한반도에 열리기를 염원한다. 맹주완 아산문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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