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진의 시네마수프]비우티풀

아무리 시시한 인생도 죽음을 떠올리는 순간 간절한 무엇이 됩니다. 멋지게 한번 살아보지도 못하고 생존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생산과 소비 공장의 터번 안에 함께 갇혀 모두가 발을 맞춰 걷고 있는 것 같은 삶. 그러나 그런 삶 속에서도 이제 죽으라 하면 죽지 못할 이유가 너무나 많습니다.

영화 `비우티플`의 주인공 욱스발 또한 또 하나의 시시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불법체류자들에게 취업을 알선해주거나 경찰에 뒷돈을 대주면서 수수료를 챙기며 살아가는 욱스발. 그에게는 정작 귀한 재능이 있습니다. 바로 죽은 자의 영혼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욱스발의 능력은 그저 아름아름 알고 찾아온 사람들의 부탁으로 장례예식에 불려가 사망자의 마지막 말을 가족들에게 전해주거나 영혼이 잘 떠나도록 얘기를 나눠주고 용돈 벌이나 하는 데에 근근히 쓰일 뿐입니다. 그러다 갑작스런 통증으로 병원을 찾은 욱스발은 전립선암이 이미 뼈와 간에 전이 된 상태라는 청천벽력의 진단을 받게 됩니다. 화학 요법을 받으면 몇 달은 정상적으로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의사의 말.

내세를 잘 알고 있는 욱스발. 그러나 그는 정작 자신의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이제 겨우 열 살 남짓의 딸 아이 안나와 아직도 잠자리에서 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어린 아들 마테오가 있기 때문입니다. 별거 중인 아내 마람브라는 심한 조울증으로 아이들을 건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되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기 일쑤입니다.

욱스발은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갖은 베아를 찾아가 아직 죽을 수 없다고 얘기하지만, 베아는 욱스발에게 죽음이 보인다며 신변을 정리하라고 말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욱스발. 아이들에게 조금의 돈이라도 더 벌어 남겨주고 싶어 마음이 쫓깁니다. 그러나 조바심을 낼수록 일들을 어그러지기만 합니다. 뒤를 봐주던 세네갈인들이 경찰 단속의 급습에 강제출국을 당하고 욱스발은 가장을 잃은 채 스페인에 불법체류자로 남게 된 그들의 가족들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리고 건설현장 인력으로 보내던 중국인 밀입국자들 수십 명이 열악한 지하실 거주 창고의 가스누출로 집단 사망하는 일이 터지고 맙니다. 중국인 브로커는 어리석게도 그 시신들을 바다에 유기해버립니다. 오래지 않아 수십 구의 중국인들의 시체 밀려와 해변 모래사장에 나뒹굴고 해안가 바닷물에 둥둥 떠다니는 지옥과 같은 풍경이 뉴스에 보도되고 이 사건은 전 스페인을 충격에 빠뜨리게 됩니다.

떠나가지 못하는 사망한 불법체류자들의 영혼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조울증 재발로 병원으로 들어간 아내를 대신해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을 찾는 욱스발은 강제 출국당한 세네갈인의 아내 이헤에게 아이들을 맡기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죽음의 두려움은 존재의 소멸에 대한 것일 수도, 내세의 심판에 대한 것일 수도 혹은 그저 미지에 영역에 대한 막연한 공포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무게로 다가오는 남기고 가야할 사람들에 대한 책임과 걱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오롯이 하나의 생명, 하나의 의식의 실존의 문제로 남겨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맞이할 혹은 통과해야 할 한 존재의 탄생 이후의 가장 큰 사건인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오롯이 자신의 존재에게 부여되는 의미의 새김과 준비의 시간을 사치로 만들어버리는 남는 이들을 향한 마음. 그것은 더욱 애처로운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그려냅니다. 그리고 아무리 시시한 인생도 무척이나 소중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세상의 비극의 한 가운데에서 존재의 무게를 생각하게 해주는 이 영화 <비우티풀>을, 가혹한 삶의 무게를 재어 그만큼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영화의 거장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최고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 세계 영화의 흐름에 무게 추가 되어주는 작품에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현진 극동대학교 미디어영상제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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