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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이야기] 문화재, 가장 현대적인 문화현상

2018-06-20기사 편집 2018-06-20 19: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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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라고 하면 고리타분하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 자고 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뜨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왜 지나간 것에 집착하느냐고 핀잔을 준다. 짧은 인생에 유행 따라가기도 벅찬데 철 지난 구닥다리에 눈길 줄 시간은 없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문화재는 옛것이고 요즘 기준으로 따지면 실용성이 없다. 그런데 조금 관점을 다르게 가지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문화재란 개념이 가장 현대적인 문화현상이라면 손사래만 칠 수는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옛것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요즘처럼 치열했던 적은 없었다. 수 십 만년 동안 똑같은 생활이 계속된 석기시대 사람들이 몇 백 년 전 물건이나 풍속을 지키려고 했을까? 세월이 흘러도 생활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 그들에게는 과거와 현재가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과거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했을 지 모른다. 그러니 현재와 꼭 같은 옛것을 구태여 지키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오래된 것을 문화재로 지정해서 나라에서 관리하지 않았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옛것을 보호하고 관리할 필요성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요즘에 비하면 그때까지도 백 년 전, 이백 년 전, 오백 년 전의 생활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거의 같은 집에서 살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었다. 생활에 변화가 없으니 옛것에 대한 감흥이 요즘보다 덜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많은 노력을 들여 옛것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 물론 당시에도 옛것을 함부로 훼손하지는 않았다. 지난 왕조의 무덤이나 옛터를 나름 보호했다. 그러나 그것은 옛것에 대한 샤마니즘적 경외감 때문이었지 요즘처럼 문화재로서 옛것을 보존하려는 차원은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서양도 마찬가지였다. 로마시대 사람들은 그리스 조각품을 문화재로 보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보는 하얀 대리석으로 된 그리스 조각품은 모두 로마시대 복제품이다. 원래 그리스 조각은 청동으로 만들어졌고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었다. 청동을 이용하기 위해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청동 조각을 모두 녹여 버렸다. 대신 대리석으로 복제품 만드는 것이 당시의 유행이었다. 유물의 가치에 대한 인식보다는 청동으로 얻을 수 있는 현실적인 이득이 압도적으로 중요했다. 18세기에는 로마유적을 답사하는 것이 유럽 지식인 사이에 유행이었지만 이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금강산 유람 가는 정도였다.

19세기 이후 과학기술의 혁명적인 발전은 인간의 삶을 완전히 바꾸고 놓았다.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것 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우리 주변을 온통 차지했다. 최근 백 년의 변화가 인류 역사상 그 이전 모든 변화보다 더 크다고 할 정도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이라고까지 불리는 인공지능이 등장해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사회변화의 가속현상 속에서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온갖 새로운 발명품들이 이제까지 익숙하게 봐왔던 전통적인 것 들의 자리를 차지한다. 자연스럽게, 그냥 두면 사라지고 말 것 중에서 지키고 싶은 것이 생긴다. 한편으로 현대인들은 본능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기른다. 나는 이것을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현대인의 균형감이라고 부르고 싶다. 미래로 향한 질주가 빨라질수록 언제든 뒤돌아 보고 현재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과거가 필요한 법이다.

문화재는 또한 현대 과학기술과 무척 가깝다. 탄소동위원소를 이용해 오래된 유물의 나이를 측정하고 적외선 카메라로 지워진 옛 그림이나 글씨를 되살린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가장 현대적인 것과 문화재는 일맥상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때문에 나는 감히 문화재를 가장 현대적인 문화현상이라고 정의한다. 최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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