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독의 등급와인 샤또들이 주로 위치한 4개의 유명 와인 마을 중 마고/뽀이약/쌩줄리앙 마을은 앞의 칼럼들에서 각자 소개해드렸고, 이번엔 마지막으로 쌩떼스떼프 마을로 가겠습니다. 오메독 와인의 훌륭한 개성과 풍미는 주로 지롱드 강을 따라 내려와 퇴적된 자갈토양에 기인하는데, 뽀이약 바로 위 지롱강의 가장 하류에 위치한 쌩떼스떼프에 다다르면 강물에 휩쓸려온 자갈들이 줄어들면서 진흙의 비중이 높아집니다.

토양의 밀도가 높기에 상대적으로 배수가 느리고, 태양열을 보관해주는 자갈의 함량이 적기에 밤에는 덜 따뜻한 편입니다. 따라서 쌩떼스떼프 와인은 남쪽 마을들에 비하면 산도가 높고 보다 짙은 색깔과 강한 타닌을 지녀, 강건하고 억세서 쉽게 꺾이지 않는 와인으로 유명합니다. 최근에는 진흙 토양에 어울리는 메를로의 비중을 높여 부드러운 맛이 강조되면서, 타이트한 타닌 스타일을 추구하는 와인 컨설턴트들의 영향으로 보다 강렬해져가는 다른 마을과의 차별점도 옅어져가고 있기는 합니다,

거친 면모의 쌩떼스떼프 와인은 보르도 시내에서 제일 멀기도 하여 1855년 등급 와인 선정시 오메독의 4개 마을에서 가장 저평가를 받아, 5개 샤또만 등급을 받았습니다. 2등급을 받은 샤또 2개, 몽로즈(Montrose)와 꼬스데스뚜르넬(Cos d`Estournel)이 쌩떼스떼프 와인을 대표합니다. 1815년 비교적 근래에 탄생한 샤또 몽로즈는 장미(rose) 언덕(mont)을 포도원으로 개발해서 샤또 명칭이 유래했습니다. 몽로즈는 라뚜르처럼 지롱드 강변에 바로 접한 자갈 언덕에 자리하기에, 라뚜르와 같은 강렬함과 오랜 숙성력을 뽐냅니다.

꼬스데스뚜르넬은 이름이 길고 어려워 축약해서 꼬스(자갈 언덕을 의미하는 고어)로도 불리는데, 동양식 3개의 탑으로 장식된 건물이 마치 왕관 같은 모양으로 뽀이약 마을 경계 위쪽에서 샤또 라피뜨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힘이 좋으면서도 메를로 비율이 높아 과일 맛이 풍부한 꼬스는 `슈퍼 세컨드`라 불리는 최상급 5개의 2등급 와인 중의 선두입니다. 빅토리아 여왕, 나폴레옹 3세, 칼 마르크스가 즐겨 마셨고, 장꼭또와 스탕달 같은 예술가들이 열광했다고 합니다. 2016년 보르도 와이너리 투어시 이들 2등급 샤또는 직접 방문했었기에, 다음 칼럼에 연이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3등급 샤또 깔롱 세귀르(Calon Segur)는 라뚜르, 라피뜨와 무똥을 동시에 소유해서 `보르도 와인의 신`이라 칭해졌던 세귀르(Nicolas Alexandre de Segur) 후작이 "나는 라피뜨와 라뚜르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지만, 내 마음은 깔롱에 있다"고 한 이야기와 하트가 그려진 레이블로 인해, 발렌타인 데이 등에 인기 있는 선물용으로 각광을 받는 와인입니다. 샤또 4등급 라퐁-로쉐(Lafon-Rochet)는 다른 마을보다 언덕의 경사면이 심한 쌩떼스떼프 샤또들을 렌트카로 구석구석 찾아다니다가 와인 라벨의 노란색(태양색)보다도 훨씬 짙은 노란색 샤또를 발견하고 들어갔는데, 송아지만한 노란 개들이 무섭게 짖어대는 바람에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사진만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등급와인 선정에서 차별을 받았던 쌩떼스떼프는 2003년 크뤼 부르주아 (Cru Bourgeois) 선정에서 최고 등급 크뤼 부르주아 엑셉셔넬 와인 9개 샤토 중 4곳이 선정되면서, 오메독 지역에서 탁월한 품질의 와인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임을 잘 보여줬습니다. 그 중의 하나인 샤토 드 페즈(de Pez)는 15세기에 설립되어 깔롱 세귀르와 함께 보르도에서 가장 오래된 샤또입니다. 프랑스 혁명 전까지는 1등급 샤또 오브리옹의 설립자 뽕딱(Pontac) 가문 소유였다가 1995년에 샴페인 명가 루이 로드레(Louis Roederer)에 인수되면서 지속된 투자로 예전의 영광을 되찾고 있는데, 제가 좋아하는 샤또 중의 하나입니다. 신성식 ETRI 미래전략연구소 산업전략연구그룹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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