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 때다. 자대배치를 받고 처음으로 축구를 하게 됐다. 연병장에 나가기 전에, 중대 막사 앞에 집합을 했다. 중대의 한 고참병사가 이렇게 말했다. "군인은 전쟁에서 지면 아무 것도 아니다. 축구도 전쟁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겨야 한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그러면 이기기 위해서 반칙을 해도 된다는 얘기인가? 천박한 놈." 나는 그 때까지 `안되면 되게하라`로 표현되는 군인정신이 무엇인지 잘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짬밥을 먹을수록, 새벽에 경계근무를 설수록, 안보에 대한 정신교육을 받을수록 나는 현실이 얼마나 매서운 것인지, 역사는 얼마나 승자에게 관대한 것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상은 평화롭지만, 역사는 폭력적이다(Ideals are peaceful, history is violent). 이 말은 `퓨리(Fury)`라는 전쟁영화에 나오는 대사다. 이 영화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도 전쟁광처럼 사람을 죽인다. 나도 비슷했다.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갖다 대라(마태복음 5:39)`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감동하던 젊은 기독교인이었지만, 총검술로 사람을 베고 때리고 찌르는 전쟁연습을 이를 악물고 했다. 내가 믿는 종교적 신념은 평화로운 것이었지만, 역사와 한반도의 현실은 냉혹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남북·북미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나는 `평화는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도대체 국제정치는 왜 이렇게 복잡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더 자주하게 되었다.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찾기 위해, 국제정치 관련 책자와 동영상 강의를 통해 공부를 하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내린 소박한 결론은, 우리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데 외교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외교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실정세 파악을 잘 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현실정세 파악을 다른 말로 하면 무엇일까? 그것은 강대국 편에 드는 것이다. 이것이 천박한 것일까?

우리는 어떤 한 개인이 이타주의도 자기소신도 없이, 이기적인 이익만을 쫓아 강자에게 붙어먹는 인생을 추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회적 수준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독교 현실주의(Christian Realism)를 발전시킨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는 그의 유명한 저서 『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집단의 도덕성은 개인의 도덕성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이야기하며, 집단 간의 관계는 윤리적이기보다는 힘에 의해 규정되는 관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도덕과 윤리로 국제관계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도리어 사태의 악화를 가져온다고 하였다.

아직까지 예수나 석가모니 등 인류 성자들의 가르침을 모든 지구인들이 완벽하게 내면화하지 못해서일까? 국제정치에서는 이타주의, 명분, 의리, 이상 등의 거룩한 단어들이 힘을 못쓴다. 당장 대한민국이 국제관계에서 이타주의, 명분에 따라 행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삼전도의 굴욕, 경술국치가 다시 있지 말란 법이 없다. `미국이라는 돈만 밝히는 신자유주의 깡패국가가 싫다`라는 이상주의도, `미국이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며 구원해 주었다`라며 의리만을 생각하는 것도 전략적이지 못하다. 중국, 일본, 러시아에 대한 인식도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자신과 북한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한 민족으로서 선의를 가지고 북한을 대하면 북한이 달라지겠지`라는 생각도, `북한 빨갱이들은 절대 변하지 않을 상종하지 못할 악의 축`이라는 인식도 적절치 않다.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까?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 10:16)라는 예수의 말씀 중, 국제관계에서는 뱀처럼 되는 것이 더 중요한 듯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군사·경제적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정확한 예측이 요구된다. 그 이후 강대국과 연합하며 국익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정지웅<배재대 복지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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