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한국의 보수당과 보수세력들은 국민들로부터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이미 예견된 일이지만 실제로 나타난 선거 결과는 참담 그 자체다. 선거직전 유권자들에게 진보정권을 견제할 최소한의 구도나마 만들어 달라고 읍소도 해보았다. 뒤늦은 반성과 사과도 했다. 그러나 보수당과 그 세력들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샤이(shy) 보수는 없었다. 화난 엥그리(angry) 보수만 있었을 뿐이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평화와 통일의 물꼬가 터지고 있다. 냉전과 수구의 논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 급격한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면 국민들의 신뢰를 다시 얻기는커녕 더 따끔한 회초리로 맞을지 모른다. 그동안 모든 게 변했는데 보수당과 보수세력들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국민들의 판단이다. 오죽하면 기존 보수가 폭삭 망해야 정신 차리고 새로운 보수가 나올 수 있다고 보수진영 스스로가 한탄했겠는가. 늦었지만 지금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당명을 바꾸거나 보수 대통합만 가지고는 안된다. 무엇보다 보수가 그간 스스로 가둬버린 낡은 정치이념과 사회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비전과 가치 그리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국민들의 공감을 받아야 한다. 보수가 가야 할 새 길과 새 역할은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 최근의 중요한 이슈로 부각한 남북평화와 통일을 향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동시에 남북간 화해와 통일에 대한 대한민국의 새 비전과 추진전략을 제시하고 보수의 역할을 정립하는 일이다. 지난 12일 북미 정상회담은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비핵화의 길이 순탄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난 70년간 적대관계 속에 전쟁발발 위기의 직전까지 치달은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 대화와 협상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는 크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 기여한 문재인 정권의 공도 인정해줘야 한다. 다만, 북한의 비핵화에 너무 낮은 수준의 북미간 합의 내용에 대한 보완과 한국 안보상황 약화에 대한 대비책 마련, 그리고 북한체제 지원에 대한 비용부담의 문제 해결은 정권이 독단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안보와 경제는 경험 있는 보수와 협력해야 한다.

같은 분단 국가였던 독일도 1969년 동·서독간 평화와 화해의 물꼬를 튼 주체는 1969년 사민당(진보당)의 브란트 총리다. 그 후 20년간 진보와 보수가 이념을 뛰어넘어 균형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통일정책을 협력적으로 끌고갔다. 그 결과 1990년 기민당(보수당) 콜 총리가 통일을 완성하게 된다. 통독의 교훈은 우리 남북간 관계개선과 통일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진보와 보수간 이념적 대립과 갈등이 아니라 상호 정책적 역할분담이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보수는 경제적 힘의 우위를 기반으로 하는 `자석이론`에 입각해서 안보공백과 비용부담의 문제를 조화롭게 풀도록 그 역량을 발휘할 새 대안을 제시해줘야 한다. 남북간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를 무조건 부정하고 반대만 하는 것은 더 이상 국민들에게 안 먹힐 것이다.

어떤 체제든지 어떤 국가든지 멀리 그리고 바르게 날기 위해서는 좌우 양 날개가 있어야 함은 물론 힘차게 양 날개짓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좌는 우를 적폐세력으로, 우는 좌를 박멸세력으로만 보고 날개 하나로만 날겠다는 망상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새는 아무리 날개가 크고 힘이 있어도 날개 하나로는 얼마 날지 못하거나 제자리를 맴돌다가 죽고만다. 지금 우리나라는 한동안 날개짓을 잘 못해 그 역할을 잃어버린 보수가 이제 환골탈태해서 새 길을 찾아 나서야 할 때다. 진보 또한 보수의 새 역할과 능력이 필요함을 통 크게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남북화해와 통일을 향해 힘찬 양 날개짓으로 높이 멀리 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6·13 지방선거의 교훈이자, 보수가 가야할 길이다.

육동일 충남대 교수·대통령직속 자치분권위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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