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카운터(Bean Counter)는 `콩을 세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기업의 재무 또는 회계 담당자를 가리키는 비속어이다. 이들은 모든 문제를 숫자와 데이터로 분석하고 비효율 제거와 이윤극대화를 추구해 소비자의 만족보다 주주들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데 최고의 가치를 둔다. 따라서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보다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을 가져 제품과 서비스의 혁신을 어렵게 만든다.

이에 반해 카가이(Car Guy)는 `차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최고의 상품을 생산하는 현장 전문가를 에둘러 표현하는 말이다. 카가이 눈에 비치는 빈 카운터는 `아이비리그 MBA 학위`, `조직 관료화`, `숫자 경영에 의한 탁상공론` 등으로 묘사된다. GE의 전 회장인 잭 웰치(Jeck Welch)가 적폐로 지적한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 머리만 굴리다 실행하지 못하는 참사를 부르는 자`의 카테고리에 들어 맞는 유형이다.

한편 GM, 포드, 클라이슬러 부회장을 역임한 밥 루츠(Bob Lutz)는 반세기 동안 자동차 빅3와 생애주기를 함께 한 전형적인 카가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빈 카운터스`에서 빈 카운터를 `숫자와 데이터로 기업을 망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전설의 자동차인`, `진정한 디트로이트 맨`, `영원한 넘버 2`등 별칭만 보더라도 카가이로서 그의 명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밥 루츠는 GM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파산하자 카가이 경영인으로 일선에 복귀해 조직의 혁신을 주도했다. 그는 숫자놀음에 빠진 빈 카운터들을 실패의 주범으로 비판하며 신발은 신발 만드는 사람, 차는 차 만드는 사람이 경영을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러나 유례 없는 경영 혁신에도 불구하고 꺼져가는 GM의 엔진을 살려냈다는 평가는 받지 못했다. 특히 빈 카운터들은 밥 루츠를 최고의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열정은 높이 사나 경영에 대한 기본(목표, 전략, 실행)이 부실한 `현장 전문가`정도로 폄하했다. GM의 실패에는 빈 카운터와 카가이 간의 소통과 신뢰 부족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리더십 부재가 있다. 카가이는 자동차산업을 둘러싼 변화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빈 카운터는 일본 자동차의 약진, 전기차산업의 도래 등 환경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분별한 혁신이 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작업장에서 소요되는 혁신의 양과 질, 변화의 속도와 빈도 등을 현장과 소통하며 경영전략으로 녹여낼 수 있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우리 역사에 소통의 리더십으로 유명한 위인은 세종대왕일 것이다. 세종은 `경연`이라는 제도를 통해 학문과 기술을 강론, 연마하고 신하와 더불어 국정을 협의했다고 한다.

신하들의 말을 듣고 이해하며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집현전을 통해 통합적인 지식을 습득했고 흉년이 들면 궐 밖에 나가 농부들에게 당장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았다 하니 요즘 말하는 현장경영을 한 셈이 된다.

이러한 리더십 이슈는 금융기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칫 고객의 목소리가 경시되거나 현장의 전문성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면 경영자의 비전과 전략은 공허한 메아리가 돼 구성원들의 주변을 위성처럼 맴돌 것이다. 경영자는 소통과 신뢰의 리더십을 기반으로 카가이의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혁신의 장을 마련해 조직의 경영목표가 현장으로 파고들어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근 급격한 환경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면서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바꿀 수 있는`스피드 경영`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변화관리를 가능케 하는 경쟁 우위 원천 역시 구성원 간의 소통과 신뢰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직 내에서 의사소통은 상의하달과 하의상달이 수시로 교차해 신뢰가 형성돼야 한다는 의미라 본다. 필자가 지난해까지 같이 근무했던 상사는 늘 신뢰, 소통, 스피드, 현장이라는 4대 경영철학을 설파하였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기울여 오셨다. 이 네 가지 사항에 현대경영에서 요구되는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리더십이 전부 포함 됐다고 생각된다.

전용석 농협중앙회 대전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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