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중구 청계2가에 설치되어진 베를린장벽이 지난 8일 그래피티를 하는 한 청년에 의해 훼손됐다. 이곳의 베를린장벽은 지난 2005년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베를린 시에서 기증한 의미 있는 상징물이다. 장벽 양면 중 서 베를린을 향해 있던 면은 통일을 염원하는 그림과 낙서로 가득했고, 동베를린 쪽은 낙서 없이 깨끗했다. 동독이 자국민의 탈주를 막기 위해 접근을 막았기 때문이다. 양면의 다른 모습은 분단 상황을 드러내는 역사적 증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하지만 어느 청년이 예술이라는 단어로 위장하여 장벽의 양쪽 면에 페인트칠을 하고 자신이 세운 브랜드 이름을 써넣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소위 `인증샷` 을 올리면서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여러 매체와 누리꾼들은 위의 사건을 보며 "예술을 가장한 범죄" 라고 하였으며, "남대문 방화범에 버금가는 문화재 훼손"이라고 말했다.

분명 이번 사건의 의도와 행위는 사회 비판적이거나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래피티 작가들과 매우 다를 것이다. 그래피티는 스프레이로 그려진 낙서 같은 문자나 그림을 뜻하는 말로 `spraycan art` 라고도 한다. 현대 그래피티는 1960년대 말 뉴욕의 브롱크스 거리에 분무 페인트를 이용해 강렬한 채색과 에너지를 지닌, 속도감 있고 도안화된 문자들을 거리의 벽에 낙서와 같이 그리면서 본격화됐다.

이러한 거리낙서가 현대미술로서 자리 잡은 것은 바스키아와 키스해링의 공이 컸다. 그는 어린이가 그린 것처럼 어설퍼 보이는 자신의 그림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표현했으며. 키스해링 또한 단순화 된 사물을 검은 종이 위에 흰 분필로 그림을 그렸으며, 주로 에이즈 퇴치, 인종차별 반대, 핵전쟁에 대한 공포 등의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문화와 역사의 유산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필자는 위의 사건을 보며 프랑스 혁명 당시 가톨릭교회의 건축물과 예술품을 파괴한 반달족의 로마 침략이 떠올랐다. 위의 청년이 남북 통일의 염원을 담아 기증한 문화유산의 의미를 이해했다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었을까. 예술이란 이름을 걸고 본인의 브랜드를 알리려는 일종의 과도한 관심 끌기로 일어난 현대판 반달리즘이 아닐까. 백요섭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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