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함의 중 하나는 개헌을 통한 세종시의 행정수도가 공식적으로 물 건너 간 것이다. 헌법 개정 공론화에 불이 붙었을 때만 해도 지선과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로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만들자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개헌 자체가 무산되면서 13일 시점으로 `세종시=행정수도` 개헌 카드는 정치적으로 완전히 폐기됐고, 세종시의 앞 날은 더욱 험난해졌다. 이제 세종시 완성으로 가는 `한 방`이나 지름길은 거의 생각하기 어렵게 됐다.

사실 개헌에 실낱 희망을 보인 충청인들이 순진했던 건 아닌 지 모르겠다. 더불어민주당이 일찌감치 행정수도 관련 조항을 개헌안 대신 법률로 규정하기로 했다는 점에서다. 청와대나 집권여당을 향해 전투력을 보여줘야 할 자유한국당은 아예 발을 빼다시피 했다. 그런데도 충청은 나 홀로 이루지 못할 꿈을 오래도 꿨다. 대통령 임기 3년 차인 2020년에 21대 총선이 치러지는 정치 일정 등을 감안할 때 개헌 모멘텀을 다시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세종시가 자력갱생할 수 밖에 없게 됐다는 의미다.

해양경찰청을 빼낼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 해경의 인천 환원을 올해 안에 마무리하겠다고 못 박았다. 그 것도 국가균형발전 비전 선포식이 열린 지방분권의 심장 세종시에서다. 반면 행정안전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전에 대해선 `조속한 추진과 차질 없는 준비`라는 원론적 언급에 그쳤다. 400억여 원을 들여 이전한 기관을 지방선거 전략으로 2년도 채 안 돼 원 위치 한다니 참담하다. 이런 논리라면 계룡대의 해군본부는 진작에 진해로 갔어야 맞다. 또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주장하는 억지가 힘을 얻지 말라는 법이 없다.

마땅히 옮겨왔어야 할 여성가족부 이전과 관련해선 구체적 논의 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여가부는 2004년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위헌 결정 이후 서울 잔류 부처로 분류된 뒤 요지부동이다. 감사원 같은 다른 미이전 중앙행정기관도 마찬가지다. 여가부의 경우 공무원 숫자가 300명을 밑돌고, 워킹 맘이 많아 이전 시 이탈 우려가 크다는 말에 제대로 된 반박 한번 하지 않은 게 사실 아닌가.

세종시는 외풍을 견디며 광역자치단체 승격 5년 만에 인구 30만 명 시대를 맞아 순항하는 듯 보인다. 그동안 40개 중앙행정기관과 15개 국책연구기관이 이사를 왔고, 정주여건이 개선되면서 인구가 많게는 매년 5만 명 넘게 늘었다. 자치구 신설과 국회의원 정수 확대가 멀지 않았다. 기업과 대학 유치에 속도를 내고, 광역도로망을 촘촘히 구축한다면 인구 유입에 탄력이 붙을 게 분명하다. 주민들로선 시민주권 특별자치시로의 도약이 진행 중이라는 걸 실감할 만하다.

문제는 세종시의 인구 블랙홀이다. 국가통계포털 `국내인구 이동`을 분석해보면 2012-2017년 유입된 약 17만 명 중 60% 이상이 충청권 인구였다. 40.9%인 7만 2000여 명이 이웃 대전에서 와 주변도시를 악화시키는 딜레마를 불러왔다. 반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유입된 인구는 5만 명(28.0%)이 되지 않았다. 대전시 인구 150만 명 붕괴의 일등공신이 된 반면 이전 부처 공무원을 빼곤 수도권의 인구 유입을 거의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얘기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세종시 성공을 위한 실행 플랜을 점검하고, 세부 전략을 가다듬어야 한다. 협력과 상생의 중심으로 충청의 거점이 돼야 할 세종시가 블랙홀로 괴물이 되도록 해선 안 된다. 국토균형발전과 지방 분권도 헛구호가 되고 만다. 행정수도 헌법 명문화 노력을 포기하지 말 되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행정수도 신개념 법안 마련에도 눈길을 돌려야 한다. 청와대와 국회 분원 이전의 불씨도 다시 살려야 할 때다. 지선 이후에는 세종시를 완성하고 충청을 살릴 액션 B가 구체화돼야 분권도, 균형발전도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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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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