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의 묵시록 21,1~8절은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한은 이렇게 말을 시작한다.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하느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자비, 그리고 이와는 반대되는 인간의 하느님께 대한 변덕스러운 마음이 공존하던 곳이다. 이곳은 인간의 나약함과 죄로 인해 죽음, 슬픔과 울부짖음, 그리고 괴로움이 있는 곳이다. 하느님께서는 변함없는 사랑과 자비로 인간의 나약함과 죄에도 불구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완성하신다. 창조 이야기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노래하며 시작된 성경은 새 창조 이야기로 찬양을 끝맺는다. 성경은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하거나 강박감 속에서 살게 하지 않는다. 성경은 우리에게 희망과 자유를 준다.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고,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새 예루살렘은 `승리하는 사람`이다. 승리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승리를 한 사람이다. 우리는 선과 악의 싸움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지만 사실 이것은 불가능한 말이다. 피조물인 악은 창조주 선의 싸움 상대가 되지 못한다. 선과 악의 싸움이 가능한 것은 우리가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과 악 사이에서 고민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선악과와 바벨탑의 이야기에서 잘 들어나고 있다. 자신을 비우고 낮추시는 하느님과 반대로 인간은 자신을 채우고 높여 하느님처럼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고 말씀하신다. 자신을 버리는 사람, 하느님께서 창조 때부터 종말 때까지 그러셨듯이 사랑으로 타자를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비우고 낮추는 사람이 바로 `승리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 앞에 악은 무능하며, 그가 비워낼수록 하느님께서는 그를 통해 많은 거룩한 일들을 해나가신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 21)라는 구원완성에 대한 기도가 그 안에서, 그리고 그를 통해 성취된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어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음에서 절정에 달한 `승리`는 내 안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어좌에 안아 계신 분이 말씀하신다. "다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완성될 새 세상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 `승리하는 사람`들이 차지할 새 세상은 말 그대로 새로운 세상이다. 우리의 경험과 이성으로 알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참조. 1코린 15장) 가톨릭 수도자들과 성직자들의 독신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삶은 다가올 새 세상을 미리 드러내준다. 독신은 고난이 아니라 봉헌이다.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는 것이 바로 독신이다. 이러한 봉헌의 삶은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앞당겨 사는 삶이다. 부부는 서로가 서로에게 온전히 자신을 봉헌함으로써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봉헌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이미 여기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요한의 묵시록은 이렇게 심판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만 더 분명한 것은 희망을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요한의 묵시록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 명은(요묵 7,4) 구원받을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얼마나 큰지에 대한 말씀이다. 십사만 사천이라는 숫자는 `하느님의 백성`을 뜻하는 열둘에 열둘을 곱한 후 다시 `많음`을 뜻하는 천을 곱한 숫자이다. 성녀 소화 데레사 말한다. "제가 인류 역사상 가장 패악한 사람들이 저지른 죄를 혼자 다 지었다고 해도, 하느님을 만나면 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분께 달려가 그 품에 안길 것입니다. 제가 지었다는 죄를 다 합해도,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이라는 용광로에 비하면, 그것은 작은 빗방울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저는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강력하게 거부하지 않는 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 주 예수님의 은총이 모든 사람과 함께하기를 빕니다."(요묵 22,20~21) 오창호 천주교대전교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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