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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광장] 나를 '무명용사'라 부르지 마라!

2018-06-11기사 편집 2018-06-11 17: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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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곽희정 국립대전현충원 현충과장
할머니 손을 잡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이었다. 담임을 맡은 선생님께서 입학생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를 때마다 학생들은 손을 번쩍 들면서 "예"하고 대답하였다. 호명 도중에 할머니께서 내 손을 들어주며 얼른 대답하라고 하셨다. 나는 그날 비로소 집에서 부르던 이름 외에 평생 나와 함께 하게 될 다른 이름을 하나 더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세상에 태어나면 누구나 이름 하나쯤은 갖게 된다. 아명, 필명, 예명이나 호, 심지어 가명까지 갖고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소중한 이름 하나도 갖지 못하고 일생을 살았던 사람도 있다. 국립대전현충원에 부부가 함께 안장된 한 애국지사의 부인은 이름이 없어서 비석에 '배위 ○○ ○씨' 라고 본관과 성만 표기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이름을 잊고 살기도 하였다. 우리들의 할머니나 어머니처럼 '○○네 할머니' 또는 '○○네 어머니'라고 불렸다. 그래도 그들은 손자나 아들 이름으로 사는 것을 행복이라고 여겼다.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는 가장 기초적인 사랑의 표현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알아주기만 해도 뿌듯한 만족감을 느낀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틈에서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이가 있을 때 반가움과 기쁨에 젖어본 기억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과 비슷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귀를 쫑긋하며 돌아보게 된다.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반기며 달려가는 사람만큼 찾으며 부르는 사람도 대답소리에 똑같은 반가움과 기쁨에 젖는다.

지난 3월 23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된 제3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55명의 전사자 이름을 한 분 한 분 부르는 행사가 있었다. 모든 참석자들은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며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컥하며 감정이 북받쳐 올라 숙연한 분위기에 젖기도 하였다.

국립대전현충원을 상징하는 현충탑에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6·25 전사자 유골 33위를 모시고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에 모셔져 있는 6368위까지 합하면 총 6401위가 잠들어 계신다. 전쟁이 끝나고 50년을 훌쩍 넘긴 긴 세월이 지났지만 우리는 그분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고 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도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우리는 함부로 그분들을 이름 없는 용사 즉 '무명용사'라 부르고 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닌 모든 것에도 이름을 붙이고 불러준다. 하지만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한 지식이나 낮은 기억력을 탓하지 않고 그냥 잡초, 잡목, 잡석, 잡어라고 부르며 제멋대로 그 이름을 빼앗아 버린다.

우리는 그분들께 똑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다. 묻힐 한 평의 땅도 내주지 않고 유골을 현충탑에 모셔놓고 붙여서는 안되는 '무명용사'라는 명찰을 만들어 붙였다.

이름을 알아내지 못했노라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국가와 살아있는 우리들을 위해 단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목숨을 바친 그분들의 희생을 잊고 있었던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자성해 보아야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중략)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나도

그에게로 가

그의 꽃이 되고 싶다

(하략)

김춘수의 시 '꽃'의 한 대목이다.

그분들은 말한다.

"나에게도 엄마와 아빠, 아내와 아들 그리고 누나와 동생이 그토록 애타게 목놓아 부르며 찾던 소중한 이름이 있단다. 단 한 번만이라도 듣고 싶은 이름이란다. 나를 '무명용사'라 부르지 마라. 내 이름을 찾아다오. 그 때까지 차리리 '이름 모를 용사'라고 불러다오." 라고. 곽희정 국립대전현충원 현충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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