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는 104세 호주 최장수 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스위스에 가서 안락사를 선택한 이야기를 접했다. 그는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우선 구달 박사는 더 이상 자신의 삶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또 다른 이유는 84세에 운전면허를 취소당해서 더 이상 혼자서 다닐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의 이동권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노인들이 교통사고를 많이 일으켜서 운전면허를 반납 받고 있는 제도가 일본 등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특별한 질병이 없이 혼자서 식사 등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안락사를 선택했다는 점은 장수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나라에게 시사하는 점이 매우 크다. 그의 안락사 선택은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그의 안락사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다. 먼저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목적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이 지루해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이 기본적인 생리적 기능도 다른 사람의 도움에 기대야 한다면 자존감이 크게 손상될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의 반대가 지루함이라는 말도 있다. 그는 이미 104세로 남들보다 장수를 누렸고, 훌륭한 과학자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삶이 좋아질 가능성은 없고 나빠지기만 할 것이기 때문에 무기력함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필자가 볼 때 그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았고, 이제는 삶을 멋지게 끝낼 수 있는 때라고 판단하고 소위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반대로 비판적인 견해도 있다. 이 세상에는 구달 박사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심각한 질병과 장애를 가진 이들은 가족의 사랑과 돌봄을 받으면서 하루라도 사랑하는 이들 곁에 더 남으려고 발버둥친다. 어느 누구도 특별한 병이 없는데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포기할 자격은 없다. 단지 노화가 진행돼 스스로 운전을 못하고 남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삶을 포기하는 것은 일종의 만용이며 사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다. 학자로서 비록 미약하지만 삶을 지속할 의미를 찾기 위해서 끝까지 최선을 다 했는지 의문이 든다. 특히 구달 박사의 안락사를 아무 비판 없이 대중에게 아름답게 포장해서 전달하는 언론도 문제의 심각성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노인 자살율은 10만 명 당 80명으로 OECD 가입국 중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노인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장년의 자살과는 원인 자체가 다르다. 젊은 사람들의 자살 이유는 정신 질환, 학업 스트레스, 취업, 사회적응 실패, 사업 실패 등일 것이다. 이에 반해 노인들은 질병으로 몸이 쇠약해져서 스스로 기본적인 삶을 할 수 없게 됐는데 돌봐줄 사람과 경제적인 여유 마저 없으면 우울증으로 이어져 자살을 하게 된다.

노인 자살에는 사회적인 이유도 있다. 노인이 공경 받고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장수마을로 유명한 이탈리아 사르디니아섬은 세계 3대 장수촌으로 백세 노인이 많고 남성도 여성만큼 오래 사는 곳이다. 전 세계 어느 곳이나 남성의 수명이 여성보다 6-7년 적은데 이 곳은 남자와 여성의 수명의 차이가 없다고 한다. 부유하지도 않고 자연 환경도 척박한 섬에 이탈리아 본토에 비해 7배나 많은 백세 노인이 살고 있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학자들은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자주 만나고 교류를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사회적 교류가 이 마을의 장수 요인이라는 것이다. 특히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가 장수의 비결이라고 한다. 노인 어느 누구도 혼자 사는 경우가 없고 아들, 딸 아니면 조카, 손자들에 둘러싸여 함께 지내는 대가족 제도가 유지돼서 노인이 공경과 보살핌을 받는다.

결국 노인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인간관계 형성과 보살핌이다. 외로움과 무기력은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한다. 우리나라의 대가족 제도가 핵가족 제도로 변화하면서 독거노인이 많아지고 이들은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 삶을 자살로 마무리 짓는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혼자 사는 노인에게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노인 자살을 막을 수 없다. 혼자 사는 노인을 지원할 수 있는 활동, 노인과 함께 사는 가족 문화의 복원, 노인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관계 형성을 도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도입 등이 필요하다. 이승훈 을지대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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