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이쯤 되면 선거판이 요동칠 만도 한데 요지부동이다. 선거기간 내내 이번 선거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되곤 했다. 지방선거에 지방은 안보이고 결과가 뻔한 맥 빠진 선거가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이런 기류는 투표가 있기 1128시간(47일) 전에 가진 남북 정상회담에서부터 엿보였다. 6월 12일 투표일 하루 전에 있을 북미정상회담은 전세계가 주목하는 세기의 빅 이벤트로 이번 지방선거를 잡아 삼키고도 남을 태세다. 남북평화 이슈가 등장하기 전에도 이미 문재인 대통령의 압도적인 지지율이 지배하는 선거가 될 것이란 전망이 꾸준히 제기된 터라 본선거가 시작된 뒤에도 선거분위기는 달아오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지지율에 편승하는 선거 전략을 쓰고,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대통령을 깎아 내리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런 정쟁구도 하에 중앙발 대형이슈를 중심으로 지방선거가 진행되다 보니 진짜 지방선거의 의미가 상실했다는 지적이다. 공교롭게도 지방선거에 맞춰 글로벌 이벤트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야당의 비난을 감수해야 하지만 여당에서도 지방선거 실종에 대한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정당과 후보들은 슬로건을 통해 유권자의 눈길을 사로잡으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듯 하다. 선거에서 표심잡기는 슬로건에서 시작된다. 문구 하나로 이슈를 만들고 유권자의 눈길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란 슬로건으로 연임이 유력했던 부시 대통령을 물리친 바 있다. 간단명료한 문구로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인 슬로건도 있다. 대선에서 제기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준비된 대통령`, `저녁이 있는 삶` 등 국민에게 친숙함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에서도 당의 정체성과 선거전략, 비전을 엿볼 수 있는 슬로건이 눈길을 끈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 초반 `나라다운 나라 든든한 대통령`이란 슬로건을 내걸었으나 지방선거가 대선처럼 비쳐질 수 있다며 `나라다운 나라, 든든한 지방정부`로 슬쩍 바꿔 달았다. 촛불민심을 반영하고 문재인 정부의 자치분권 정신과 중앙정부를 뒷받침해 나가자는 취지다.

재미있는 것은 여당이 마치 지방선거를 대선을 방불케 하는 슬로건을 내놓자 야당도 똑같이 대결적 자세로 슬로건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자유한국당은 처음에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란 슬로건을 채택했다. 문재인 정부 1년 만에 행정, 사법, 언론, 교육 등 사회 모든 분야가 국가사회주의로 넘어가고 있음을 경계하기 위해 이런 슬로건을 정했다. 보수정당답게 선거에서 안보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이 슬로건을 정했지만 당 안팎으로 비난이 쇄도하자 일자리 문제와 최저임금 인상 등 민생문제 쪽으로 방향을 튼 `경제를 통째로 포기하시겠습니까`로 변경했다.

바른미래당은 `망가진 경제 먼저 살리겠습니다`, 평화당은 `쇼하는 정당이 아니라 일하는 정당`, 정의당은 `갑질 없는 나라, 제1야당 교체, 정당투표는 오비이락`으로 정해 선거에 임하고 있다. 정의당의 `오비이락`은 기호 5번을 찍으면 한국정치가 비상하고 2번(한국당)을 찍으면 추락한다는 뜻으로 당의 현실을 잘 반영한 슬로건이란 평이다.

대전시장에 출마한 후보들 역시 슬로건을 내걸고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민주당 허태정 후보는 `더불어 행복한 대전`을 통해 당과 문재인 정부의 일체감을 강조했고, 한국당 박성효 후보는 `위기의 대전, 경험있는 시장`을 내세워 민주당 소속의 전임시장의 실정을 알리고 시장으로 일해 본 경험을 어필하고 있다. 또 바른미래당의 남충희 후보는 경제시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돈버는 대전, 깨끗한 시장`이란 슬로건을, 정의당 김윤기 후보는 `모두를 위한 도시`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후보들이 내세운 슬로건은 짧은 시간에 유권자의 눈을 사로잡을 승부수다. 선거의 승패는 이들 슬로건이 유권자들의 마음에 얼마만큼 파고 드느냐에 달렸다. 기대하건대 이번 선거에서는 후보의 비전이 담긴 슬로건이 유권자에게 제대로 전달된 후보만이 승리했으면 한다. 곽상훈 취재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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