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미의 독립영화 읽기]

1950-60년대, 프랑스에서는 영화로 새로운 시도를 꾀하는 무리가 있었다. 이들은 `좌안파(Rive Gauche)`, `누벨바그(Nouvelle Vague)`등으로 불렸지만 그것은 타인이 붙인 것으로 그들에겐 자각이 없거나 어쩌면 편리한 홍보수단일 뿐이었다. 아녜스 바르다는 바로 이 무리 중 한 명이었으며 꾸준히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작업을 해왔다.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의 취향과 관심사가 너무나도 명확히 보이는 작업들을 해왔는데, 이번 영화의 제목에도 쓰인 `얼굴`이라는 개념은 그 중에서도 그녀의 주요 관심사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얼굴`은 사람이던 동물이던, 생물이던 무생물이던, 이야기를 가진 모든 것에서 발견되는 것이자 이야기 그 자체다. 그렇기에 아름다운 해변 마을의 인상을 한 연인을 통해 그려나가고(라 푸엥트 쿠르트로의 여행), 벽과 벽화들에서 표정과 동작을 읽어내기도 하고(벽, 벽들),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이들과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감자들에게서 은유적 이미지들을 발견해낸다.(이삭줍는 사람들과 나) 이런 그의 상상력은 늘 경쾌하고 유머러스하며 정감을 느끼게 한다.

바르다 감독은 자신이 해왔던 작업들이 사진작가이자 설치미술가인 JR의 작업들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함께 미술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영화를 만든다. 사진을 대형출력해 건물외벽이나 구조물들에 부착해서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JR의 작업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람들의 모습이 엮이면서 소외된 것들과 사라져 가는 것들의 얼굴들이 재발견된다. 오래된 마을, 재개발될 건물들, 버려진 마을, 창고, 공장, 부두의 컨테이너에 부착되는 사진은 그곳에 머무르거나 주변에 있는 인물들이다. 그 이전의 JR의 작업과는 결이 다르게 즉각적으로 메시지가 드러나지 않기에 함께 담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철거될 탄광촌에서의 작업 도중 발견한 인부의 목욕하는 사진에 대한 아들의 이야기는 광부들의 삶의 고달픔을 가늠하게 한다. "어떤 날에는 제가 어머니 대신에 일하고 오신 아버지의 등을 닦아드릴 때가 있었어요. 그 때 까만 먼지가 닦인 아버지의 등엔 멍이 많았죠."

이 영화는 크게 하나의 얼굴을 그리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아흔살의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의 얼굴이다. 영화에는 이따금씩 그가 영화를 따라 걸어왔던 삶, 그리고 다가올 미래가 떠오른다. 그가 말하듯, 우리 모두는 사라질 것이다. 그 전에 상상으로 마을에 얼굴을 그려 `그 곳에 우리가 있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함께 늙어가는 동료의 암호필담에 울적해진 바르다에게 젊은 JR이 전하는 사려깊은 위로는 그 감동을 배가시킨다. 장승미 대전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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