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아파트 담장을 따라 핀 장미가 마음을 설레게 한다. 꽃의 여왕답게 그 색깔과 자태가 무척이나 탐스럽다. 장미의 꽃말은 잘 알려져 있듯 열렬한 사랑과 순결을 뜻한다. 필자가 활동하는 동아리의 한 회원은 자신의 옥상에 핀 다양한 꽃의 이야기를 꽃의 이름과 꽃말을 풀어 소개하곤 하는데 많은 꽃의 종류만큼 그 이름과 의미도 다양하다. 붉은 찔레꽃은 `신중한 사랑`을, 작약은 `수줍음`을 뜻하며, 필자가 좋아하는 금낭화는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라는 꽃말이 있다고 한다. 꽃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꽃말을 이야기하는 그만의 옥상 세상은 상상만 해도 더없이 행복하고 의미 있는 순간일 것이다.

도시의 거리를 따라 늘어선 있는 수많은 건물들도 저마다의 이름은 대부분 가지고 있다. 00 아파트, 00 빌라, 00 빌딩, 00 주택 등이 보통이다. 건물주들은 건물의 위치나 용도 규모 등을 쉽게 드러내도록 명칭을 정해 부동산 가치를 올리거나 위치 파악, 이용의 편리성을 강조하려는 성향이 크다. 인지성을 높이고 이용의 편리성을 높이는 명칭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하겠지만 너무 직설적이고 더러는 선정적인 이름이나 편리성을 강조하는 이름만 난무하다 보니 건물이 가지고 있는 의미나 변별력, 정체성 등은 찾을 수 없고 부르는 명칭만 다를 뿐 늘 그 빌라이고, 그 빌딩, 그 주택일 뿐이다.

그래도 십여 년 전부터 대형 건설사에 의해 지어지는 아파트나 대형 상가 건물들은 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남다른 의미를 가진 다양한 이름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 고대의 철학이나 신화의 내용을 빌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어휘의 어원을 찾아 따오거나 조합하여 왠지 있어 보이는 이름을 만들어 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지역이나 사는 사람들의 특성은 관계없이 어디서나 같은 건물 이름들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다 보니 이 또한 식상해지고 이름의 의미도 퇴색해지고 전혀 새로울 것도 흥미롭지도 않다.

소쇄원의 제월당은 바람과 달의 집을 뜻하며, 광풍각은 비 갠 뒤 해가 뜨며 청량한 바람이라는 집말이다. 그 이름과 뜻만 새겨도 집의 풍경과 주인의 삶이 그려진다. 우리 조상들은 집을 지으면 당호나 택호를 지어 불렀고 사람의 이름보다 더 신중하며 깊은 뜻을 담아 지었다. 심지어 당호나 택호를 그 집의 주인의 아호와 함께 하는 경우도 많았을 정도로 가치를 두었다. 이는 주인의 성품에 따라 집을 지었으며 그에 따른 집의 품격이나 위상도 달랐기에 당호를 짓는데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그 집이 곧 주인이요 그 집 이름이 주인의 이름이요 그 집말이 곧 주인의 인격을 드러나는 물아일체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집 이름은 무엇입니까?" 조금은 어렵고 조금은 낯선 어휘나 어감으로 어색할 수 있다. 상추에게도 `나를 해치지 마세요`라는 꽃말이 있다고 들었을 때의 느낌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집의 품격이고 느낌도 분위기도 달라질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예쁜 꽃을 대하듯 당신의 집을 대하고 삶의 이야기도 풍성해질 것이다. 주인의 품성과 가족과 도시의 의미를 담은 집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집말을 이야기하는 도시의 일상은 상상만 하여도 더없이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일 것이다. 이상우 건축사사무소 에녹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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