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판다는 건 단지 340그램짜리 종이와 잉크와 풀을 파는 게 아니에요. 새로운 인생을 파는 거라고요. 책에는 사랑과 우정과 유머와 밤바다에 떠 있는 배, 그러니까 온 세상이 들어 있어요. 진짜 책에는 말이에요."

미국의 작가 크리스토퍼 몰리의 `파르나소스 서점`에 나오는 말이다. 파르나소스 서점은 뉴잉글랜드 지방을 배경으로 백마 페가수스가 끄는 마차에 책을 가득 싣고서 마을과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책을 판매하는 이동 서점이다. 주인공 중 한 사람은 헬렌 맥길. 작가가 되어 바쁜 동생을 대신해 그녀는 열다섯 해 동안 농장 살림을 혼자 떠맡다시피 한다. 어느새 서른아홉 살, 심통이 난 헬렌은 미플린이 운영하던 파르나소스 서점을 동생에게 팔러 오자 충동적으로 이를 인수해 버린다.

순간의 결정이 헬렌의 삶을 영원히 바꾼다. 파르나소스를 몰고 미플린과 함께 여행을 떠난 헬렌은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 간다. 그녀가 판매하는 책 하나하나에는 평소의 삶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인생이 담겨 있지만, 책을 판매하면서 그녀의 삶 자체도 새로워진다. 새로운 자아가 생겨나고,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며, 새로운 인생의 길이 열린다. 무의미한 피로의 인생이 충만한 기쁨의 인생으로 탈바꿈한다.

희랍인들에 따르면, 평소 인간은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Cronos)의 바퀴를 굴리면서 살아간다. 하루하루 온힘을 다해 스물네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인생은 단순히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 부족한 것일지 모른다. 아무리 열정을 쏟아 넣은 삶일지라도 세월이 흐른 후엔 덧없고 공허할 뿐이다. 아무도 우리 삶을 떠올리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 한 주일 후, 한 달 후 오늘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계적으로 다가왔다 흩어지는 시간들을 생각하면 두렵고 무섭다.

우리의 진짜 인생은 `의미로 충전된 특별한 시간`인 카이로스(Kairos)에 달려 있다. 순간순간 지나가는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는 가끔 튀케(Tyche, 우연, 행운)의 여신이 나타난다. 로마에서는 이 여신을 포르투나(Fortuna)라고 했다. 튀케 여신의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으며, 앞머리는 길고 뒷머리는 없다. 튀케 여신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빠르게 사라지는 여신의 앞머리를 잡아챌 힘이 있으면, 우리의 삶은 행운으로 부풀어 오른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사라지고 카이로스의 시간이 일어선다. 잊혀도 상관없을 무의미의 세월 속에서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시간이 시작된다.

호모 센티엔스(Homo Sentience). 인간은 `의미의 동물`이다. 우주에는 본래 아무런 뜻도 없다.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 시공간이 무한히 연속될 뿐이다. 유한한 인간 존재는 우주의 무의미를 견딜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하늘에 뜬 별을 보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별자리 신화를 지어냈다. 인간은 의미 없이는 살지 못한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다. `이성`(호모 사피엔스)이나 `도구`(호모 파베르)나 `놀이`(호모 루덴스) 등은 인간이 이야기를 만들어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자질에 불과하다.

문제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추구하려 해도, 튀케 여신이 언제 출현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여신은 약속을 하지 않는다. 변덕이 심한 탓에 올 듯 오지 않고, 안 올 듯 갑자기 찾아온다. 따라서 희랍인들은 우발적으로 다가오는 튀케의 앞머리를 언제든지 붙잡을 힘을 갖추려고 애썼다. 후에 로마인들은 이를 비르투스(Virtus, 덕)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에게 덕이 있다는 것은 뜻밖의 기회를 잡아서 의미 있는 일을 이룩했다는 뜻이다.

로마인들은 비르투스를 지도자의 기준으로 삼았다. 지도자들은 행운의 존재들이어야 한다. 자기 인생에 업적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찾아온 기회를 이용해 공동체 전체가 기념할 위업을 이룩할 줄 알아야 한다. 촛불혁명 이후, 첫 번째 지방선거 기간이다. 묻고 싶다. 후보자 중 누가 촛불이 준 행운을 잡아채 우리 지역을 바꿀 역량을 갖추었는지를.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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