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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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 인류가 가장 널리 사용한 금속이다. 일상생활에서 단 하루라도 철로 만들어진 물건을 접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그 영향은 지대하다. 인류 문명의 발전은 철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에게 철은 어떤 의미였을까. 당시 치열한 국가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철의 생산은 국가의 유지와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였다. 철기문화의 전파와 발전의 흐름은 4세기 백제의 대규모 철 생산유적인 진천 석장리유적이나 충주 칠금동유적을 비롯한 다수의 생산시설과 전국 각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꾸준히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정작 원료인 철광석이나 사철(砂鐵)을 녹여 쇠를 불리고 이를 두드리거나 다시 녹여 쇳물을 뽑아내는 고대 제철의 핵심기술은 여전히 비밀에 싸여 있다. 고대 제철에 대한 기술사적 자료가 남아있지 않고 제철유적의 조사에서도 노(爐) 등의 시설물은 대부분 파괴된 상태로 발견되고 있어 기술 해석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고고학적 자료를 근거로 한 복원 실험과 과학적 분석의 유기적인 융복합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고무적이다.

칠금동 유적에서 확인되는 제철유구를 바탕으로 실험과정을 살펴보면 백제 시대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노를 복원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다. 복원된 실험용 노를 제작한 후 여기에 숯과 철광석을 집어넣고 바람을 불어넣어 1200℃ 이상의 열로 광석을 녹여 철을 만들어 내는 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이때 생성된 철은 불순물이 많아 다시 가열하고 두드려 불순물이 적은 덩이쇠(철정)를 만들어 형태를 다듬는데 이것은 철기 제작의 마지막 공정에 해당한다. 이 과정에서 철뿐만 아니라 불순물이 혼합된 슬래그 등도 함께 만들어지는데, 이들의 성분과 미세조직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제철기술의 해석을 낳고 있다. 이처럼 고고학적 발굴조사를 근거로 한 실험과 현상을 구현하고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베일에 싸여있던 고대의 기술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과거에는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유물을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문화재를 대상으로 한 융복합 연구가 활발하다. 고고학, 재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함께 철을 만들고 고대의 제철기술을 밝히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 기술에 대한 융복합 연구가 우리 미래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고대 제철기술은 곧 국가의 권력을 상징했다. 그 상징성이 우리의 융복합 연구를 통해 새로운 동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옛 것이라고 지나쳤던 문화재가 새로운 시도와 도전이 가능한 매력적인 대상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내 주변의 문화재를 다시 한 번 살펴볼 일이다. -이은우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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