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여행하면 먼저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물론 그 유명한 에펠 탑과 개선문이기도 하겠지만 조금 더 눈여겨보면 몇 백 년 전의 건축물과 도시가 현대 문명의 상징인 고층 빌딩들로 대체되지 않고 그들과 잘 어울리며 보존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만큼 옛것들을 구닥다리라고 여기지 않고 자국의 역사적 전통과 유산에 대한 높은 자긍심과 그 가치를 알아보는 품격 있는 인식이 있기에 이들을 잘 살리고 계승하는 노력이 도시 파리의 오늘을 품위 있고 멋스럽게 하는 것이다.

2006년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의 해였고 그 특별한 해에 필자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놓칠 수 없었기에 학생들과 함께 그 곳을 방문했었다. 당시 빈 필과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N. Harnoncourt) 지휘 그리고클라우스 구트 (C. Guth) 감독의 `피가로의 결혼`을 관람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건 화려한 출연진과 뛰어난 지휘자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공연이여서기도 했지만, 당시 무대가 파격적인 현대판의 소위 리메이킹 버전의 연출은 아니지만, 절제, 균형, 대칭과 같은 고전시대의 틀을 잘 보존한 현대적인 버전이었기 때문이다. 익숙했던 모차르트 시대의 화려한 드레스들과 가발, 가구 등의 무대는 단순화한 형태로 대체되었지만 고전시대의 상징을 무시하지 않으려는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예를 들면, 층계의 개수는 짝수이고 창문도 대칭을 이루며, 주요 등장인물들의 의상도 흑백으로 통일되어 연출되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너무나도 다양한 버전들 중 오페라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변형되어 거의 음악극 (music drama)에 가까운 것, 혹은 올리비아 핫세 주연의 고전 영화가 아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최신 버전의 영화와는 성격이 다른, 원작에 충실한 `현대판 피가로의 결혼`이었다.

오늘날 문화와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원작 그 자체보다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항상 추구해서인가? 피터 셀러스 (P. Sellars)나 조셉 로지 (J. Losey)가 감독한 모차르트의 또 다른 오페라 `돈 조반니`를 보고 있자면첫 장면에서부터 어느 시대의 돈 조반니인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이 정도로 리메이크가 원작을 벗어난다면 차라리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작곡가들이 작품을 작곡할 당시에도 어느 정도 사회를 풍자하고 숨은 알레고리들이 있지만, 이런 리메이크들은 원작이 무엇인지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이다.

예술은 IT산업이나 과학과는 다른 분야이고 작품이 탄생했을 당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급변하는 사회와 문명에 발맞춰 예술이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리에서 질량보존의 법칙이 있듯, 예술도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면서도 기본적인 보존 (conservation과 preservation)과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당시 작가와 작곡가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조윤수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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