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버닝

"리틀헝거가 그레이트 헝거가 될 때까지 계속 춤을춰요. 이렇게 팔을 점점 위로 뻗으면서…"

불이 닿자마자 화르륵 불꽃을 내며 타버리는 비닐하우스. 영화 `버닝`의 잔상은 아프리카에서 그레이트 헝거가 되기 위해 춤추는 부시맨들이 피운 모닥불과 타는 듯한 불꽃을 내며 사라지는 비닐하우스의 불꽃으로 남는다.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는 배달을 갔다가 어릴 적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해미`를 만나고, 그녀에게서 아프리카 여행을 간 동안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를 돌봐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는 아프리카에서 만난 벤이라는 정체불명의 남자를 종수에게 소개한다. 어느 날 벤은 해미와 함께 종수의 집으로 찾아와 자신의 비밀스러운 취미에 대해 고백한다. 그때부터 종수는 무서운 예감에 사로잡히게되고, 그가 해미를 사랑한다고 확신을 가질 즈음 해미는 사라진다.

이 영화는 세 청춘의 미스터리한 이야기에 현 시대의 자화상과 인물들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 정체불명의 남자 벤, 종수의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 등 세 사람의 만남과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비밀스럽고 강렬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종수와 해미의 삶에 불쑥 들어온 벤은 두 사람의 인생에 균열을 일으킨다. 자신의 취미를 비밀스럽게 고백하는 벤, 흔들리는 종수, 벤이 고백했던 날 이후 사라진 해미까지 이창동 감독 작품에서는 접한 적 없었던 미스터리한 스토리를 힘있게 밀고 나간다. 영화 중반부 해미의 실종 이후부터 전개되는 종수의 벤을 향한 의심과 추적, 그리고 벤의 행적들은 끝까지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제공한다.

영화관을 나온 이후에도 영화의 잔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불편하고, 불친철하고, 모호한 이 영화에서 삶의 밑바닥에 있는 해미의 모습을 통해 어쩌면 `벤이 태웠던 비닐하우스는 해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한다. 연약하고 버려진, 허허벌판에 혼자 남겨져 태워버리더라도 아무도 모를, 작은 불씨로도 쉽고 빠르게 화염을 일으키며 타버리는 비닐하우스 말이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이창동 감독은 그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사회의 이면을 섬세하게 보여주며 남다른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 같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이 여타의 영화들과 차별되는 점은 단순히 하나의 이야기만을 다루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의 만남을 시작으로 그들의 관계를 그려내지만, 캐릭터들이 지닌 사연을 넘어 현재 우리들이 겪고 있는 시대의 문제와 위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스토리의 전개 속도와 음악도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다. 빨라졌다, 느려졌다를 반복하는 스토리의 전개는 관객을 어느 순간 부암동 달동네 언덕, 해미의 방 안으로 데려다 놓는다. 비닐하우스를 태우면 가슴이 뛰는 `베이스`를 느낄 수 있다던 벤의 대사와 함께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둥둥둥`하는 낮은 현악기의 울림은 영화의 몰임감과 울림을 더했다. 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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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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