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창밖은 오월인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수필가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과 작가의 유일한 창작시집 `창밖은 오월인데`의 개정판이 출간됐다. 이 책은 한국 수필 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킨 명산문으로, 오랜 시간 서정적이고 명상적인 수필의 대명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연`은 피천득 특유의 천진함과 소박한 생각, 단정하고 깨끗한 미문으로 완성된 담백하고 욕심 없는 세계다. 이 책에는 기존에 수록된 원고 이외 `기다리는 편지`, `여름밤의 나그네` 등 2편이 추가됐다. `기다리는 편지`가 상해 유학시절 편지를 기다리는 일을 희망 삼았던 애달픈 마음의 무늬라면 `여름밤의 나그네`는 한여름 밤 길 위에 선 나그네의 풍경을 한 편의 서사시처럼 그려 보인다. 그 외에도 박준 시인의 발문과 생전에 박완서 작가가 쓴 추모 글, 피천득 작가의 아들 피수영 박사의 추모 글을 수록해 다양한 관점에서 피천득 작가를 바라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박준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읽은 책으로 인연을 꼽았을 정도로 피천득 선생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박완서 작가의 글은 생전에 두 작가가 나누었던 우정의 깊이를 짐작케 할 정도로 다정다감하다. 아들을 잃고 상심에 빠져 있던 박완서 작가를 불러 위로의 말 한마디 없이 누구보다 깊은 위로를 전한 피천득 선생의 사려 깊은 마음도 느낄 수 있다.
`창밖은 오월인데`는 시인의 유일한 창작 시집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수필가로 알려져 있지만 피천득 선생은 시로 문학을 시작했다. 이 시집은 종전에 `생명`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나 개정판인 이 책에서 제목을 바꾸고 수록 시 목록도 변화를 줬다. 피천득 문학의 핵심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생명`이 가장 잘 드러난 이미지가 오월이고, 그와 같은 오월의 청신함이 잘 드러난 작품이 바로 `창밖은 오월인데`라는 시이기 때문이다. 극도로 절제된 언어와 여운이 가득한 시상이 이루는 조화가 편편마다 절묘하다.
오월에 태어나 오월에 작고한, 오월의 작가 피천득의 탄생일과 기일을 맞아 `피천득이라는 기분 좋은 산책길`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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