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창밖은 오월인데

창밖은 오월인데
창밖은 오월인데
"산호와 진주는 나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산호와 진주는 바닷속 깊이깊이 거기에 있다. 파도는 언제나 거세고 바다 밑은 무섭다. 나는 수평성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잠수복을 입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나는 고작 양복바지를 말아 올리고 거닐면서 젖은 모래 위에 있는 조가비와 조약돌들을 줍는다. 주웠다가도 헤뜨려 버릴 것들이기에, 때로는 가엾은 생각이 나고 때로는 고운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산호와 진주가 나의 소원이다. 그러나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리 예쁘지 않은 아기에게 엄마가 예쁜 이름을 지어 주듯이, 나는 나의 이 조약돌과 조가비들을 `산호와 진주`라고 부르련다. "<피천득 수필집 `인연` 서문>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수필가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과 작가의 유일한 창작시집 `창밖은 오월인데`의 개정판이 출간됐다. 이 책은 한국 수필 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킨 명산문으로, 오랜 시간 서정적이고 명상적인 수필의 대명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연`은 피천득 특유의 천진함과 소박한 생각, 단정하고 깨끗한 미문으로 완성된 담백하고 욕심 없는 세계다. 이 책에는 기존에 수록된 원고 이외 `기다리는 편지`, `여름밤의 나그네` 등 2편이 추가됐다. `기다리는 편지`가 상해 유학시절 편지를 기다리는 일을 희망 삼았던 애달픈 마음의 무늬라면 `여름밤의 나그네`는 한여름 밤 길 위에 선 나그네의 풍경을 한 편의 서사시처럼 그려 보인다. 그 외에도 박준 시인의 발문과 생전에 박완서 작가가 쓴 추모 글, 피천득 작가의 아들 피수영 박사의 추모 글을 수록해 다양한 관점에서 피천득 작가를 바라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박준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읽은 책으로 인연을 꼽았을 정도로 피천득 선생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박완서 작가의 글은 생전에 두 작가가 나누었던 우정의 깊이를 짐작케 할 정도로 다정다감하다. 아들을 잃고 상심에 빠져 있던 박완서 작가를 불러 위로의 말 한마디 없이 누구보다 깊은 위로를 전한 피천득 선생의 사려 깊은 마음도 느낄 수 있다.

`창밖은 오월인데`는 시인의 유일한 창작 시집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수필가로 알려져 있지만 피천득 선생은 시로 문학을 시작했다. 이 시집은 종전에 `생명`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나 개정판인 이 책에서 제목을 바꾸고 수록 시 목록도 변화를 줬다. 피천득 문학의 핵심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생명`이 가장 잘 드러난 이미지가 오월이고, 그와 같은 오월의 청신함이 잘 드러난 작품이 바로 `창밖은 오월인데`라는 시이기 때문이다. 극도로 절제된 언어와 여운이 가득한 시상이 이루는 조화가 편편마다 절묘하다.

오월에 태어나 오월에 작고한, 오월의 작가 피천득의 탄생일과 기일을 맞아 `피천득이라는 기분 좋은 산책길`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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