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성 지역의 어느 식당에서 두해 전에 졸업한 제자를 만났다. 학창 시절에 학생회 임원도 하면서 캠퍼스 생활을 열심히 했던 친구이다. 나는 의례적인 인사말로 어디 근무하는지, 결혼은 했는지, 사는 곳은 어디인지 등에 대해 물었다. 내가 기대했던 대답은, 좋은 곳에 취업을 해 결혼도 하고 직장 근처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빗나갔다.

그 제자는 아직도 자취방을 전전하며 취업준비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의 기대가 무너진 뒤에 제자를 다시 보니 그 모습이 더 짠하게 다가왔다. 나는 그가 의기소침하지 않도록 "괜찮아, 큰 인물은 대기만성이라잖아, 용기를 내"라고 말했다. 나는 겨우 제자의 밥값을 대신 내 주는 것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안 삼았다. 돌이켜 보니 졸업식 때 유난히 힘이 없어보이던 그 제자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청년실업의 문제를 떠올려 보았다. 각종 공식적인 통계를 보니 아직도 청년실업률이 두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숫자는 우리나라 전체 실업률에 비해서도 아주 높은 편이다. 취업 준비생 가운데 많은 사람이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가슴 아픈 통계도 있다. 청년 실업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희망과 포부를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청년 실업률을 높이는 주인공은 4년제 대학 졸업생들이다. 특히 4년제 인문사회계 졸업생들의 실업률은 다른 분야의 졸업생들에 비해 심각하다. 오죽하면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유행어가 나왔을까? 정부는 그동안 이런 문제의 해결책으로 여러 가지 국가재정사업을 시행했으나 별반 효과가 없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일시적인 미봉책을 썼기 때문이다.

대학구조조정 사업, 프라임 사업, 특성화 사업 등을 통해 대학 졸업생과 사회적 수요 사이의 미스 매칭(miss matching)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으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청년 실업률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편에 속해 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대학 졸업을 하면 대부분 본인이 원하는 곳에 취업을 한다고 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이제 정부 대책의 근본적인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알다시피, 현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국정의 제1목표를 일자리 창출에 두겠다고 공언을 했다. 그러나 취임 1주년을 지난 지금에도 청년 실업률 문제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제부터라도 청년 실업의 주요 원인에 해당하는 대학의 정원이나 구조 문제에 대해 더 과감하고 현명하게 접근해야 한다.

가령 사회적 수요에 현저히 미달하는 분야의 정원을 과감히 줄이는 대신 높은 수준의 교육 시스템을 보장해야 한다. 해당 학과 교수의 정원은 그대로 유지하고 학생 정원을 줄임으로써 소수 정예화 교육을 시행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대학의 교수 대 학생 비율은 서구 선진국들에 비해 턱없이 높은 편이다. 비교적 사정이 좋다는 거점국립대학의 경우도 1:25 내외에 이르고, 대형 사립대학이나 지방의 소규모 대학들은 더 심각하다. 중·고등학교나 초등학교의 수준에도 못 미친다.

서구 선진국들처럼 당장에 모든 대학, 모든 전공의 교수 대 학생 비율을 1:10 미만으로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수요가 적은 일부 전공 분야만이라도 그와 유사한 수준으로 조정해 보면 어떨까? 이는 대학 교육의 질도 높이고 사회적 수요도 새롭게 창출하여 청년 실업률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청년 실업 문제는 물론 대학의 정원이나 구조 조정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대학 교육이나 직업, 지역, 정년, 임금, 성별, 그리고 인생에 대한 인식 자체가 변해야 해결 가능한 문제이다. 그러나 대학의 정원 및 구조 조정을 더 전면적, 효율적으로 시행하여 청년 실업을 야기하는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는 지렛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매우 엄중하고 시급한 문제이다. 이형권 충남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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