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 좌안에서 뽀이약이 가장 강렬하고 화려한 와인을, 마고가 섬세하고 우아한 와인을 만든다면, 쌩줄리앙은 강하면서도 세련되고 우아한 와인을 빚어냅니다. 뽀이약에 맞붙어 있는 레오빌(Leoville)의 광대한 포도원은 쌩줄리앙 와인의 균형감에 대한 찬사에 가장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프랑스 혁명기에 몰수되는 등 우여곡절울 거쳐 3개의 샤또로 분할되었고, 1840년 삐에르-장 드 라스까스(Pierre-Jean de Las Cases)가 샤또 라뚜르와 인접한 핵심 포도밭(55헥타)을 중심으로 샤또 레오빌 라스까스를 출범시켰습니다. 19세기 말부터는 들롱(Delon) 가문이 소유하여 현재 소유주는 장-위베르(Jean-Hubert) 들롱입니다.

샤또 레오빌 라스까스의 2등급 와인의 정식 명칭은 `Grand Vin de Leoville du Marquis de Las Cases(라스까스 후작의 위대한 레오빌 와인)`로 아주 깁니다. 2등급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밭은 매우 복잡한 토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갈/모래, 자갈/점토, 점토가 일부 드러난 토양까지, 지롱드강에 인접해 있기에 오랜 세월에 걸쳐서 퇴적된 토양의 독특한 다양성이 와인 맛으로도 연결됩니다. 지롱드강은 포도의 빠른 숙성을 도와주고 냉해에도 얼지 않도록 매우 특수한 미세기후를 생성해줍니다. 샤또 레오빌 라스까스는 마고 지역의 샤또 팔머와 같이 어떤 해에는 1등급 샤또를 뛰어 넘는 맛을 보이기도 하는 슈퍼 세컨의 선두 주자이기도 합니다.

레오빌 라스까스는 2등급 메인 와인 포도밭 외에도 길 건너 서쪽에 위치한 2등급 형제 샤또들, 레오빌 바르똥과 레오빌 푸아페레 사이에 위치한 끌로 뒤 마르끼(Clos du Marquis, 45헥타)를 추가하여 1902년부터 와인을 생산해 오고 있습니다. 끌로 드 마르끼를 샤또 레오빌 라스까스의 세컨 와인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공식적인 세컨 와인은 대대적인 묘목 교체 후에 젊은 포도나무에서 생산된 포도로 2007년에 출시한 르 쁘띠 리옹(Le Petit Lion)입니다. 다른 세컨 와인들처럼 메를로 비중을 높여서 접근성이 좋고 보다 빠른 시기에 마실 수 있습니다.

레오빌 라스까스를 상징하는 동물은 사자(lion)입니다. 샤또를 대표하는 이미지인 포도원 입구 석문 위, 샤또 건물 위 등 곳곳에 사자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정원의 분수대도 4마리의 사자가 물을 뿜고, 건물로 연결되는 계단의 양 편에 여성 얼굴에 몸뚱이는 사자가 올라 앉아 있습니다. 양조실 안의 소형 석문 위에도, 오크통 숙성 공간에도, 심지어 와인을 병입하는 공간에도 조그만 사자상이 지키고 있습니다. 위에 말씀드린 세컨 와인 명칭 `쁘띠 리옹`도 어린 사자란 의미입니다.

와이너리 투어 당일인 2016년 7월 12일엔 마침 로버트 파커가 방문하는 날이어서 샤또 전체가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요즘 1차 발효용 대형 탱크로 사용되는 스테인레스스틸 외에도 전통적인 오크와 시멘트 탱크도 병행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운이 좋게도 2015년도 와인을 촛불 아래 랙킹(오크통 숙성 중인 와인을 옮겨 담으며 점검)하는 장면도 지켜볼 수 있었고, 한 잔 받아 맛볼 기회도 있었습니다. 채 1년도 안되어 상당히 텁텁하리라 예상했었는데, 쌩줄리앙다운 면모인지 벌써 상당히 부드럽더군요.

시음 와인은 총 7개나 제공되었습니다. 앞서 언급된 라스까스 3종 와인 외에도, 장-위베르 들롱이 1997년 매입한 뽀므롤의 샤또 네냉(Nenin)과 세컨 와인, 대대로 여성에게 상속되다가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메독 지역의 샤또 포땅삭(Potensac)과 세컨와인까지, 모두 2012빈티지를 맛 보았습니다. 샤또 뽀땅삭은 보르도 와인의 새로운 등급이었던 크뤼 부르주아에서 9개뿐인 크뤼 부르주아 엑셉셔넬 와인 중의 하나로 메독 와인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신성식 ETRI 미래전략연구소 산업전략연구그룹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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