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장마전선이 형성되기라도 한 것일까. 요즘 자주 비가 내린다. 날씨가 최근 북핵 회담을 둘러싼 이해 당사국 간의 석연치 않은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제, 한국 기자들만 북한 풍계리 핵시설 폐기 참관을 거부당했다가 뒤늦게 명단이 접수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판문점 선언 이후 예정되어 있던 후속 회담과 조치들도 줄줄이 취소되거나 지연되고 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고 불과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엇박자가 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의 고의적인 이간질과 북한의 변덕 때문일까. 아니면 북한을 자극한 미국 강경파의 도발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낀 한국 정부의 중재력의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일까. 이 모든 게 복합적인 영향을 미쳤으리라.

그런데 이런 이유를 찾는 게 사실 우리 쪽에서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이유를 찾아서 분석을 하는 목적은 그를 통해 해법을 찾으려는 데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정국의 운전대는 우리가 잡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내 눈엔 최근의 엇박자가 예측되어 있지 않았던 문제적인 상황이라고 보이지도 않는다. 난관은 처음부터 예비되어 있었고 그것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므로 어찌 보면 매우 정상적인 진행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클 거라는 자명한 진실을 망각하고 모든 걸 너무나 쉽게 낙관하고 환상을 가졌던 이쪽 국민들이 안쓰러울 뿐이다. 나처럼 처음부터 부정적인 전망을 했던 사람은 지금의 사태 역시 다소간 심드렁할 뿐이다.

돌이켜보자. 지난 평창올림픽 때부터 조성된 한반도 화해 무드와 북핵 폐기 이슈는 처음부터 북한의 표변으로 시작된 일이다. 핵 탑재가 가능한 미사일을 펑펑 쏘아올리던 김정은은 갑자기 평창에 선수단과 응원단, 문화예술단을 파견하겠다고 하고 실제로 여동생 김여정까지 남쪽에 보냈다. 그리고 남북간 정상 회담과 북미 정상 회담을 잇달아 제안했다. 그때 우리 정부는 박근혜의 실각으로 갑자기 조각된 지 8개월째 접어들 때였다. 우리의 일관되고 구체적인 노력에 대한 응답으로 이런 일이 생겼던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엇박자를 내는 것도 어찌 보면 북한의 자유다. 다시 말하면 이랬다 저랬다 할 권리가 저쪽에 있다는 거다. 그런데,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지고 10. 4 공동선언에서 별반 나아간 것도 없는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자 시베리아 횡단 철도 얘기가 나오고 파주 땅값이 들썩였다. 평양냉면집 앞에 줄 서는 것쯤은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설레발을 치면서 우물가에 가더니 숭늉을 찾았던 거다. 가장 차갑고 신중해야 할 때 어깨춤을 추었다.

먼저 의심부터 하고 희망적인 전망을 보류하는 것만큼 정부에게 큰 재량과 동기부여를 안겨주는 게 없다. 국민의 기대가 어떤 경우엔 응원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과도하면, 그래서 부담으로 작용하면 정부 역시 조급증을 갖게 되고 지혜로운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특히 남북관계 같은 내재적인 갈등 요소를 갖춘 민감한 대사를 치르는 정부는 국민의 반응이나 눈치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무조건 실리 위주로 해야 한다. 그게 국익에 필요하다면 어떤 것은 국민에게 알릴 필요도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민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우물에서 숭늉을 끓여내라고 등을 떠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들이 정말 이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자들인지, 남북 간의 평화를 바라는 자들인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물며 거기에 문화예술인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건 굉장한 넌센스다.

나는 문학을 포함한 문화예술의 존재 이유가, 성급한 결정이나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유실될 수밖에 없는 진실을 회수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결단을 호소하는 행위를 내가 늘 회의하면서 지켜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문학의 시선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만을 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언제든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데까지 미쳐야 한다. 김도언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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