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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털고 떠나신 자리 향기만 남았네

2018-05-23기사 편집 2018-05-23 14:4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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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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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 봐라."

입적에 즈음해 법정 스님이 건넨 말이라 한다.

죽음은 실재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허구이며 삶의 일부분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다고 하지만 그 가르침을 체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생사를 초월한 담담함에는 마지막까지 번뇌에 시달리는 중생들을 안타까워 하는 마음이 배어 있는 듯 하다. "내가 가는 이 모습도 공부하라"며 자신의 죽음마저도 깨달음을 주는 방편으로 삼았다.

법정은 1932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다가 1955년 통영 미래사로 입산해 1956년 송광사에서 효봉 스님의 문하에 출가했다. 서울 봉은사에서 운허 스님과 더불어 불교 경전 번역 일을 하던 중 장준하 등과 함께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1975년 본래의 수행승으로 돌아가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다.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자 불일암을 떠나 아무도 거처를 모르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혼자 살아갔다. 부단한 수행 속에서 '산에는 꽃이 피네', '인연 이야기', '오두막 편지', '물소리 바람소리', '무소유' 등 저서를 남겼다. 삶의 기록과 순수한 정신을 담은 법정 스님의 글들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고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를 영혼의 언어로 일깨워줬다.

이 책은 미발표 원고부터 지인들의 일화와 주고받은 편지까지 법정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을 담고 있다. 특히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하며 옥중 고초를 겪던 무렵 쓴 세 편의 저항시와 '임종게' 는 대중에 최초로 공개됐다.

폐암으로 투병하던 중 2010년 3월 11일 법랍 55세, 세주 78세로 1997년 12월 창건해 2003년까지 회주를 맡아왔던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입적하기 전날 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고 말했다. 평소 많은 사람에게 수고만 끼치는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도 말며,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해주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말라'고 당부했다는 법정 스님은 가는 걸음까지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다.

"스님, 임종게를 남기시지요."

"분별하지 말라. 내가 살아온 것이 그것이니라. 간다, 봐라."

부처님은 오랜 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은 뒤 '나는 불사(不死)를 얻었다'고 선언한다. 법정 스님의 정신 역시 죽지 않고 시공을 초월해 우리의 마음 속에 살아 숨쉴 것이다. 이용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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