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지체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가다가 계단을 만났다. 휠체어를 타고서는 그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매우 힘들게 되었다. 지금 `이동에 불편함이 생긴 상황`이라는 장애가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이 장애가 발생한 원인은 무엇일까? 보통,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생각을 할 수 있다. 첫째는 이 지체장애인의 다리에 의학적 손상이 생겨서 장애가 발생했다는 생각이다. 둘째는 도로나 건물에 경사로 혹은 엘리베이터와 같은 편의시설이 미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 생각은 장애의 원인을 장애인 내부에서 찾는 것이며, 두 번째 생각은 장애의 원인을 사회구조적인 것에서 찾는 것이다. 첫 번째 생각을 장애의 개별적 모델, 두 번째 생각을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라고 일컫는다.

사회적 모델은 장애라는 현상을 `사회적인` 문제로 간주하는 것으로서, 개별적 모델에서 전제하고 있는 것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사회적 모델은 장애를 개인에게 귀속된 것이 아닌, 사회적 환경에 의해 구조화된 집합체로 본다. 즉, 장애는 장애인의 욕구를 사회 내에서 수용하고 이에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대한 `사회의 실패`가 된다. 따라서 장애에 대한 사회적 모델은 장애의 해결 역시 개별적이고 의료적인 방식이 아니라, 장애를 구성하는 모든 사회적 장벽을 철폐해 나가는 방식을 추구하게 된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등장한 사회적 모델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장애학(障碍學, disability studies)으로 발전하게 된다. 장애학은 새로운 학문분야로서, 장애와 비장애를 구별 짓는 사회적 구성을 고찰하면서, 장애인을 억압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각종 기제를 분석하고 있다. 장애학이 던지는 핵심질문들로는, `장애(혹은 정상)란 무엇인가`, `누가 장애인인가`, `장애(인)는 실재하는가` 등이다. 장애학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근거하였기 때문에, 그 동안 장애 문제(이슈)를 다루는 학문이었던 의학, 작업치료, 재활, 특수교육, 사회복지 등과는 다른 접근을 취한다. 기존의 접근은 장애문제의 확대·재상산에 관한 이유에 집중하기보다는 장애인의 보건, 교육, 복지 향상을 위한 사후적 대처에 집중하였다. 하지만 장애학은 장애 문제가 정치사회적인 이데올로기와 권력에 의해 규정된 것이라고 인식하고, 보다 본질적인 문제의 규명을 추구한다.

장애학이 그 동안 밝혀낸 주요 결과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프랑스의 철학자인 미셸 푸코는 그 자신이 장애학자라고 주장한 적은 없지만, 어찌 보면 정신장애에 대한 체계적인 장애학 연구를 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푸코는 정신장애(광기)는 계몽주의 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계몽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의 고전시대에는 광기와 정상이 미분리 되었고, 광기는 그저 이성을 넘어선 영역으로서만 인식되었다. 그러나 합리주의가 등장하면서, 광기는 이성의 대립적 의미로 인식 되고, 비정상, 동물성으로 설정되어 사회로부터 감금당하게 된다. 푸코는 광기의 진정한 실체가 무엇이냐를 논하기에 앞서, 그것이 이성에 의해 `만들어진 광기`임을 고발한 것이다. 신체장애인에 대한 억압은 어떠한가? 마르크스주의 장애학자들에 따르면, 신체장애에 대한 비하와 통제가 강화된 것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공업화가 진행될수록 포디즘(Fordism)으로 대표되는 노동 및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는데,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속칭 `비표준화된 육체`를 지닌 장애인은 노동시장에서 외면당하고, 노동지상주의 사회인 자본주의에서 `가치 없는 인간`으로 대접받게 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장애학이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상이란 허구다`라는 것이다. 단순히 허구일 뿐 아니라, 어쩌면 폭력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여성학이 여성억압의 사회구조를 밝혀내면서 결국 모든 젠더의 해방을 꾀하고 있는 것 같이, 장애학은 장애억압의 사회구조를 폭로하면서 결국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해방하는 도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정지웅 배재대학교 복지신학과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