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자단의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취재가 사실상 물 건너간 분위기다. 북한이 23-25일 예정된 폐기행사에 한국 기자단의 명단을 끝내 접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영·중·러 취재진만이 어제 베이징에서 고려항공 전세기를 타고 원산으로 들어갔다. 물론 시간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북한이 뒤늦게라도 한국 취재진의 방북을 허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할 것이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5월 중 핵실험장 폐기를 진행할 것"이라며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을 초청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지난 15일 북한은 남측에 통지문을 보내 한국의 기자단을 초청한다고 알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돌연 한국 기자단의 취재를 거부한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핵실험장 폐기는 북한이 조건 없이 내놓은 비핵화 선제조치다. 국제사회도 이행여부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북한도 이 같은 점을 의식해 폐기행사는 예정대로 진행할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한국 기자단의 초청약속을 어긴 것은 `판문점 선언` 취지에도 벗어나는 일이다. 앞서 북한은 남북정상이 합의한 고위급회담도 당일 새벽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이미 일정이 잡혀있던 한미연합공중훈련과 태영호의 발언 등을 문제 삼은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다를 것으로 기대를 했지만 과거의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 이런 일들이 하나둘 쌓이다 보면 북한에 대한 신뢰는 또다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부도 우리 언론의 취재가 무산된데 대해 안타깝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남북 간 모든 합의는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은 스스로 한 약속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과거처럼 뒤집기를 반복한다면 신뢰는커녕 설 땅을 잃을 수밖에 없다. 앞서 천명한 비핵화 의지가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합의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한국 언론의 취재거부는 북한에도 결코 도움 되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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