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칼럼] 시간에 대하여-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치료를 위해 한의원에 내원하는 환자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은 `얼마나 오랫동안` 치료해야 낫는가이다. 일반적으로 발목이 삐끗했거나 갑자기 체하는 등 질병이 발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면 치료기간도 짧을 것이고, 위장 허약체질로 인한 만성 위장질환 등 선천적이거나 유전적인 질병, 또는 비만이나 흡연 등 생활환경적인 문제가 결부된 질병이라면 치료기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질병은 시간을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선천적 체질은 수 백년에 걸친 유전적 변이가 수대에 걸쳐 이어져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고 식사, 수면, 음주, 흡연, 과로, 스트레스 등 생활 환경적 문제는 내가 태어난 후 최소한 수년에서 수 십년 동안 질병요인이 쌓인 것이기 때문이다. 곧 선천적 체질에 생활환경과 습관이라는 후천적 요소가 결합돼 특정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질병이다.

시간이란,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때에도 꾸준히 일어나고 있는 그 무엇으로, 시간은 사전적 의미로 정의될 수 없으며 우리는 그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미 알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천재 물리학자인 리차드 파인만은 시간에 대해 철학적 정의를 내리고 있다. 삐끗한 발목 등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거나 교통사고로 인한 골절 등 수술을 통해 단시간에 호전되는 질환은 고령화시대에서는 점점 줄어든다. 대신 당뇨, 혈압, 고지혈증, 지방간, 만성 위염 등 젊은 시절부터 수 십년에 걸친 습관이 쌓여 생기는 질환들은 현재에도 전체 성인의 3분의 1의 유병률로 발생하고 있다. 이들 질환은 수십 년의 시간이 축적돼 몸에 새겨진 흔적이라 할 수 있는데, 결국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질환들은 치료에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흔히 당뇨, 혈압, 고지혈증을 3대 성인질환이라고 하며,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고 수많은 치료 약물들이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이들 질환 약물들은 치료라기 보다는 증상이 더욱 악화되는 것을 막고 합병증을 예방하는 목적으로 복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으며 단지 기대효과가 부작용보다 크기 때문에 처방하는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아무리 약물로 막는다고 해도 나이가 들수록 서서히 심해진다는 점과 어느 시점에서는 약물들로 조절할 수 없는 때가 온다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정의를 내리면, 질병이란 시간을 잡아먹는 도둑이며 한정된 시간 속을 여행하는 삶의 여정에서 질병은 인생을 더 빨리 흘러가게 한다. 이른 시간에 낫는 것을 바라며 특효약을 찾기보다 오랜 시간 축적된 질병의 씨앗을 돌아보고 `시간을 기다려` 낫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빠를 수 있다.

매일 흘려보내는 물에도 콩나물은 자란다. 불규칙한 식사와 수면부족, 스트레스와 과로는 콩나물이 자라듯 하루하루 병의 씨앗이 되고 크게 자라게 하는 영양분이다. 질병을 키우는 시간을 쌓기보다 건강한 습관을 익히는 것은 인생을 더 길게 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정길호 아낌없이주는나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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