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 이 맛 그것은 콩브레 시절의 주일날 아침 내가 레오니 고모의 방으로 아침인사 하러 갈 때, 고모가 곧 잘 홍차나 보리수꽃을 달인 물에 담근 후 내게 주던 그 마들렌의 작은 조각 맛 이었다. (중략…)고모가 준 한조각의 마들렌 맛임을 깨닫자 즉시 고모의 방에 있는 회색의 옛 가옥이 극의 무대 장치처럼 떠오르고 심부름 가곤 했던 광장, 아침부터 저녁까지 쏘다닌 거리들이 나타났다." 위 글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부 콩브레 중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얼마 전 4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오후였다. 선화동 천변길을 따라 목척교까지 벚꽃나무들을 보며 걷던 중, 길 옆 작은 가게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잠시 발걸음을 멈춰 섰다. 90년대 유행가였는데 주변 거리와 맞물려 잠시 추억에 잠기게 했다. 그러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홍명상가` 1층 어느 구석상점에서 구입한 워크맨이 떠올랐다. 그 워크맨에서 흘러나오던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당시에 거리를 걷던 앳된 중학생인 필자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 했다. 그 시절 순수했던 감정과 포근하게 감싸주는 추억들이 봄 아지랑이처럼 스쳐 지나갔고, 다시 눈앞에는 4월에 만개한 벚꽃이 보였다.

위의 책에서 프루스트는 `마들렌`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어떤 향기나 장면과 같은 작은 단서를 통해 과거의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다고 했다. 기억은 과거의 사건의 잔상이지만, 다시 떠오르는 순간 현재가 된다고 했다.

1999년 홍명상가는 대전천 개발로 사라졌다. 하지만 작은 상점의 라디오에서 나오는 그 시절 유행가와 장소의 흔적이 맞물려 필자를 유년시절로 안내한다. 그곳에는 더 이상 부셔지지 않는 홍명상가와 소중한 기억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덧 성인이 된 우리는 복잡한 현실 속에서 고독감과 무기력함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에는 유년시절 따듯하고 포근한 기억의 공간에서 잠시 기대 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삶의 터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면 그 속에서 지난 시간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우리를 시간여행으로 떠나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지나간 추억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백요섭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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