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워지는 물 속의 개구리`, 한국 경제를 비유한 말 치곤 참 고약하다. 위기가 코앞에 닥쳤는데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확실한 해법을 못 찾는 상황을 의미하니 변명하기가 난감하다. 지난 2013년 세계적 컨설팅 업체 맥킨지가 "한강의 기적은 멈췄다. 북핵보다 한국 경제가 위기다"라며 경고 했는 데 새 정부 들어서도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는 국제사회의 비아냥 속에 구제금융사태를 부른 교훈을 벌써 잊은 걸까.

북핵 폐기라는 달콤한 꿈에 젖어 있는 사이 냄비 속 온도는 임계점을 향하고 있다. 한국의 경기 선행지수가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단적인 예다. 9개월 연속 하락세로 지난해 5월 100.9를 찍은 뒤 내리막을 거듭하더니 마침내 99.76(2월 기준)으로 떨어졌다. 6개월 뒤인 9월부터는 경기 하락이 현실화 된다는 의미다. OECD 35개 회원국 전체 평균은 2016년 7월 이후 줄곧 상승세다. OECD의 3월 기업심리지수도 98.44로 조사대상 31개국 중 유독 한국기업만이 비관적으로 경기를 내다보고 있었다.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북핵이 발등에 불 이라고는 하나 최근의 여러 경기 지표는 지극히 불길하다. 광공업 업종 절반 이상이 5개월째 생산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고, 서비스 수출 증가율은 OECD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다. 실업률은 최악이다. 3월엔 17년 만에 4.5%로 치솟았고, 청년실업률은 11.6%로 2016년 2월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올 1분기 50대 실업자는 16만여 명으로 1999년 집계 이후 1분기로는 가장 상황이 좋지 않다.

그런데도 J노믹스의 상징인 일자리상황판은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보름 뒤인 지난해 5월 24일 청와대 집무실에 설치한 뒤 시연까지 한 게 무색하다. 16개 지표 중 개선된 건 억지로 끌어올린 임금상승률 등 3개 뿐이다. 반면, 경제활성화의 4대 핵심지표인 고용율과 취업자수·실업률·청년실업률은 하나같이 나빠졌다. 대통령 업무지시 1호인 일자리 창출이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들었다는 얘기다.

낯 뜨거운 일자리상황판을 김정은 얼굴 뒤로 감추려 한다면 오산이다. 취임 1년 동안 선방했다는 자체 평가와는 달리 "경기는 오히려 침체국면의 초입 단계에 있다고 본다"는 커밍 아웃이 나왔다. 그제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회복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기획재정부의 주장을 한마디로 뒤집었다. 대통령 직속기구에서 나온 경고음에 귀를 막아선 안 된다. 청와대와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의 한계부터 인정하는 게 순서다.

냄비 속 탈출법은 지겹게 제시됐다. 규제 혁파와 노동 개혁 등을 통한 혁신성장이다.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잡아 경제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급선무다. 시장의 기(氣)를 살리고, 마음껏 투자하게 해야 경제가 일어난다. 전가의 보도처럼 추진해온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근로시간 단축 같은 정책은 일자리를 늘리기는 커녕 기업 활동을 크게 위축시켰다. 반도체 수출 착시 효과가 사라질 즈음 경제 위기는 쓰나미가 돼 밀려올 것이다.

포스트 북핵 차원에서라도 경제 살리기가 화급하다. 비핵화를 넘어 통일로 가는 대가는 천문학적 규모가 될 게 분명하다. 핵폐기 땐 한국판 마셜 플랜식 경제 지원을 한다는 게 미국의 구상이지만 그 역할은 고스란히 우리 몫으로 돌아올 공산이 다분하다. 북핵 폐기와 통일비용이 무려 2100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미 경제지 포춘과 영국 연구소의 분석이다. 우리 1년 예산의 5배로 통독(統獨) 비용인 1조 2000억 달러를 훌쩍 넘어 견뎌내기 힘든 수준이다. 쓸 곳은 넘치고, 곳간은 텅텅 비어가는 데 언제까지 냄비에서 웅크리고 있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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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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