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천(甲川)이란 이름은 옛문헌에도 등장한다. 한국고전번역원의 데이터베이스에 `甲川`을 입력하면 50건 가까운 고전원문이 검색되는데 국사시간에 배웠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같은 실학서를 비롯해 대전 인근에서 번성했던 은진 송씨 가문의 문집 등에 갑천에 대한 개략적인 서술이 등장한다.

갑천의 자연적, 인문지리적 특징을 설명하는 구체적인 문헌은 영조때 실학자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擇里志)인데 책의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살기 좋은 지역을 골라서 특징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책의 복거총론(卜居總論)편에 이르기를 "甲川則原野極曠(갑천은 들판이 아주 넓고) 四山淸麗(사방의 산이 맑고 수려하며) 三大川合注於中(세줄기 물이 하나로 합쳐) 而竝得灌漑(물대기 쉬우니) 土皆畝種(토지가 비옥하고) ...중략... 江景不遠(강경이 가깝고) 而前有大市(인근에 큰 장이 있으니) 可作永遠世居之地(가히 대를 이어 살만한 땅이다)"고 했다.

갑천과 주변지역에 대해 이중환은 대단히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막연한 주장이 아니다. 산세가 좋고 물이 풍부하며 토지가 비옥하다는 자연과 지형에 대한 설명이 확실하고 강경이라는 큰 장이 가까워서 경제적 편익이나 인문지리적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는 실학자의 날카로운 분석도 덧붙이고 있다. 대를 이어 살만한 땅이라는 마지막 구절은 조선팔도의 좋은 땅만 골라서 소개하는 택리지 전체에서도 몇 안되는 높은 평가다.

대전시청이 정리한 자료를 보면 갑천은 길이가 73.3㎞에 벌곡천, 진잠천 등 5개 지류가 합쳐서 물줄기를 이루며 금강상류의 하천 가운데 가장 수량이 풍부해 첫 번째란 의미로 甲자를 써서 갑천이 됐다고 기원을 설명하고 있다. 갑하산(甲下山), 갑동(甲洞) 등 가까이에 유사한 지명이 있는 것도 갑천의 이름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국토지리정보원이 발행한 한국지명유래집에서 갑천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면 "갑(甲)은 `제일의` 또는 `첫 번째`라는 의미를 갖는 말이다. 이렇듯 붙여진 이름을 보더라도 갑천은 이 지역의 중심 하천으로 그 규모나 상징적 의미가 남다르다"고 적고 있다.

이렇듯 예부터 살기 좋고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됐던 갑천 유역의 도안동, 원신흥동 일원을 가장 쾌적하고 환경친화적인 신도시로 조성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갑천친수구역 조성사업은 대전에서 얼마 남지 않은 대규모 개발사업 지역이라는 사실 뿐 아니라 환경적 측면에서도 높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지역경제를 고려하고 난개발을 막으려면 공공기관이 나서서 체계적으로 신도시를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과 반대로 인공적 개발 대신 보존을 택해야 한다는 해묵은 논란은 갑천도 예외가 아니었다.

갈등을 극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당연히 그에 따른 진통을 겪어야 했지만 마침내 의견이 모아지고 방향이 정해지면서 사업추진이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개발론자나 환경론자 어느 일방의 주장이 아니라 대화와 설득으로 합리적 타협을 이끌어낸 사실은 대전이라는 지역사회가 그만큼 성숙해 졌음을 반증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전시가 행정처리에 속도를 내준 덕분으로 갑천친수구역의 첫 아파트 분양이 곧 이루어진다. 갑천과 그 주변지역의 소중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이사업의 출발점이다. 우리사회가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개발을 용납할리도 없고 대전시나 도시공사 역시 그부분을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대를 이어 살만한 신도시(永遠世居之地)를 조성해서 300년 전을 살았던 어느 실학자의 갑천에 대한 평가가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증명할 책임이 대전도시공사의 몫이 됐다. 유영균 대전도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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