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6,16) 로마 6,1~14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세례의 의미에 대한 설명이다.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세례는 예수님의 죽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세례는 죽음을 전제로 한다. 바오로 사도는 세례를 받은 이는 이미 예수님의 죽음과 하나가 되어 죄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하느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욕망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고,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 넘기지 않는 것이며,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자기 지체를 의로움의 도구로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다. 세례는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봉헌을 의미한다. 나를 위해 창조 때부터 당신을 내어주셨고, 당신의 외아들까지 내어주심으로써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하느님께 나의 모든 것을 내어드리는 것이 바로 세례이다. 마지막으로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총 아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율법주의자들처럼 무엇인가를 행하고, 성취하고, 완성함으로써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죽음인 세례는 끝이 없는 것으로 우리가 매일 매일의 삶 안에서 완성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비워진 마음 안에 하느님의 은총이 작용하게 되고 우리는 길, 진리, 생명으로 나아가게 된다. 세례는 우리가 내 힘이 아닌 은총으로 살게 되는 은총의 삶의 시작하게 해 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5~17)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들은 모든 것,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가장 깊은 신비는 `사랑`이다. `사랑` 보다 더 위대한 진리와 가르침은 없다. 깊이 수도 생활을 하고, 깊은 신비 체험을 했다면 그는 반드시 `사랑`의 사람이어야 한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구분하고, 다른 사람 위에서며, 특권을 행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고, 거짓 신비 체험을 한 것이다. 사랑은 모든 길이고, 모든 진리이며, 모든 생명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모델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조건과 제한이 없는 사랑으로 자기 비움과 낮춤, 그리고 희생이 동반된다. 이러한 자기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새 인간인 부활한 새 사람이 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요한 16,15)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을 우리에게 전해주신 것처럼,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전해주신다. 세례 때 성령을 받은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가지고 계신 모든 것이 머무는 그분의 성전이다.(2코린 6,16) 우리 보다 더 크고 거룩한 성전은 없다.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한 신비이자 가장 존귀한 존재는 바로 `나`이다. 이미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마치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마치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존재처럼 무엇인가에 목말라하고, 구원에 대해서 불확실해 하는 이유는 사랑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지 않아서, 즉 자기를 비우고 낮추지 않아서이다. 자기 비움과 낮춤에 대한 거부는 너무나 단순한 진리를 매우 어려운 것처럼 만들며, 이미 우리와 함께 있는 구원을 저 멀리에서 찾게 만든다. 성령께서 머물고 계신 우리는 또한 다른 이들에게 성령을 증거함으로써 아버지 하느님을 전해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당신의 아들에게 주시고 아들은 당신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 봉헌하신 것처럼,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신 아버지 하느님께 나의 모든 것을 봉헌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지성적인 활동이 아니라 나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는 `삶`입니다. 이 삶을 통해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과 하나가 된다. 구원을 받게 된다.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6,16)

오창호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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