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약 4개월 정도 한 포럼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포럼 회원들과의 사교적 만남도 소중하였지만 매주 있던 강의가 거의 인문학 또는 예술분야에 가까웠던 내용이라 나에게는 조금은 생소했던 새로운 분야에 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흥미로운 역사이야기, 건축에 대한 개념, 4차 산업시대의 중심축인 데이터 관리 등의 내용은 나의 주 활동 공간인 병원과 거리가 먼 듯 하였지만 돌이켜보면 현대사회의 의료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최근 의료계에서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약간은 삭막한 기계적 인간관계가 늘다보니 의료계에서도 진료수가, 보험의료정책의 변화 등 복잡한 문제 이외에도 많은 소통의 문제가 늘어나는 것 같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는 정부와의 협의, 의료 환경의 개선 등이 필수이지만 `소통`, `공감`, `융합`이 필요한 현 시대에 의료와 예술의 공통분모를 기반으로 한 관련 연구와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술과 의료와 인문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사람을 치유하고 살린다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의료가 신체적인 고통과 질병 등을 치유한다면, 예술과 문학은 정신적인 상처와 슬픔 등을 위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해부학을 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에는 예술과 의료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근현대 사회에 들어 중고등학교의 교육 자체부터 예술과 과학은 전혀 다른 것처럼 나뉘어졌다. 첨단 의료기기 개발과 의술이 발달해 갈수록 더욱 필요해 지는 것은 진료실에서 의사와 환자의 교감이다. 모든 치료는 바로 믿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병원의 입구부터 환자분들은 겁을 먹기 마련이다. 무슨 검사를 한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며칠이곤 걱정을 하게 된다. 또한 병원의 의사를 포함한 직원들은 거의 매일 대하는 분들이 환자이기에 엄청난 스트레스와 긴장감 속에서 근무하니 매번 친절할 수도 없다. 유명병원들이 갤러리 운영 및 정기 연주회 등을 하면서 예술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세부적이고 전문성에서는 부족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와 그림의 전문가인 나의 지인은 예술을 단순한 악세사리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안되고 의사와 환자와의 교감을 형성하는 치료의 한 부분으로 여겨야한다고 늘 강조한다. 예술은 각박한 의료 환경을 보다 아름답고 윤택하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면서 의사, 간호사, 환자 등 모든 의료계 관계자들에게 정신적인 안정과 위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유명한 많은 작가들은 환자의 아픔 즉 질병을 중요한 스토리 전개의 소재로 삼았다. 까뮈의 페스트에서 자신의 전쟁경험을 `질병`이라는 형태로 드러내기도 하였고 우리나라의 소설에서도 병원과 질병이라는 소재를 사회문제와 결부시켜 더 다양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도 흔하다. 문학은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명백한 치유의 한 과정이라고 한다. 의학도 마찬가지다. 날카로운 메스와 망치, 그리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약품들로 병든 사람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러한 치료과정을 통하여 환자는 고통에서 해방되거나 질병을 극복한다는 공통분모가 있는 것이다. 삶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의학은 문학이 존재하는 한 작품의 중요 모티브로 곳곳에 등장할 것이다. 과거와는 조금은 다르게 현대의학의 모습들이 작가의 생각 속에 투영되어 묘사될 것이다. 앞으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의학과 의사들의 모습, 그리고 미래 의학은 어떻게 변모해갈 것인가? 궁금하기도 하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의과대학 교육과정 안에 드라마, 미술, 소설 등을 통해 표현되는 건강과 질병에 대한 다양하고 변화하는 사회적 인식에 대한 이해를 위한 교육을 강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윤리학, 철학, 역사, 인류학, 사회학, 법학, 경제학, 작문, 대화법, 연극 등 매우 다양한 과목을 의과대학 학생들에게 교육함으로써 전인격적 의사의 양성에 힘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부분적 교육은 되고 있지만 이러한 예술적 감각이 몇 시간의 수업으로 생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한 지인이 모 병원에 가서 뭉크의 그림이 카피되어 벽에 걸여 있는 것을 보고 다시는 그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아무리 진료를 잘해도 희망을 주어야할 병원에 누가보아도 고통스러운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실망했다고 한다.

병원의 출입구부터 치료가 시작되는 시대이다. 직원의 친절함, 의료인의 진료 능력도 중요하지만 치료를 위해 방문한 환자에게 첫인상부터 믿음을 주고 잠시라도 진료나 시술이라는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는 분위기 형성이 중요하다. 병원 내에도 새로운 기술이나 시술의 과정, 약품의 소개보다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그림, 잠시라도 읽고 난후 기쁨을 줄 수 있는 책들, 그리고 슬픈 사랑 노래보다는 조금은 어깨가 들썩일 수 있는 흥겨운 음악이 울려 퍼지는 환자대기실이라도 만들어야겠다. 환자에게 가장 공포감을 주는 수술실에서도 환자가 원하면 음악을 들려주고 병실에서는 험학한 드라마나 뉴스보다는 감동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화면으로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 직원들에게도 매일 친절하라는 교육 보다도 서로 같이 식사하며 음악을 듣고 때로는 좋은 예술 활동의 티켓을 선물하는 기회를 자주 가져야겠다. 시, 그림, 음악을 포함하는 예술을 직접하는 것은 많은 배움이 필요하여 어렵지만 이들을 즐기는 것은 격식도 없어야하고 자유로워야하지 않은가? 내일부터라도 다시 내 주위의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분들에게 환자분들을 위한 재능 기부를 부탁드려야겠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 시대에서 환자와 의사 사이의 교감와 융합을 형성하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글, 그림 , 음악일 것이다. 양준영 대전베스트정형외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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