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경험적으로 금식을 하면 체질이 바뀌고 정신이 맑아진다고들 한다. 장을 비울 수 있고, 몸이 가벼워지고, 축적됐던 독소가 빠져 나가고 위, 간, 콩팥 등 장기에 휴식을 줄 수도 있다고들 한다. 종교적으로 금식의 장점이 예전부터 많이 알려져 왔고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정신수양을 위해 또는 신앙을 위해 금식을 한다. 체중 조절을 위해 금식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금식원이라는 곳도 성업 중이다.

현대인은 필요 이상의 많은 에너지를 섭취해 비만과 만성질환에 시달린다고 한다. 한 동안 일본인 의사가 주장한 일일 일식이 유행한 적도 있고, 사람들의 단식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다. 그런데 우리 인류가 언제부터 하루 세끼를 먹었는지, 어떤 식사법이 우리에게 이상적인지 등 많은 연구가 진행됐지만 세대를 이어서 오랜 기간 연구를 해야 답을 얻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누구도 시원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쥐를 이용한 동물실험에서는 칼로리를 제한하면 생명이 연장된다고 한다. 그러나 영장류나 사람에서는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에서 2012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레서스 원숭이를 대상으로 20여 년간의 시행한 연구 결과, 칼로리 제한이 평균 수명을 연장시키지 못하고 단지 연령관련 질병이 감소하고 건강 수명이 증가하는 것이 증명됐다. 일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규칙적인 간헐적 금식은 일종의 가벼운 스트레스로 작용해 우리 신체 세포의 저항성을 높여서 우울증에서부터 알츠하이머병 등 신경 퇴행성 질환의 발생을 감소시킨다고 한다. 또 인슐린 감수성을 높여서 당뇨, 비만, 심장병의 발병을 억제하기도 하고 천식의 증상을 완화시켰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 동안 연구 결과를 보면 소식 또는 규칙적인 간헐적 금식이 수명연장보다는 만성질환의 예방으로 건강수명을 높이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진화적인 측면에서 볼 때 고대 우리 조상들은 식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서 영양결핍이나 기근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주 금식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이러한 진화적인 압력이 음식을 찾고 생존하기 위해 뇌의 학습 능력과 기억력을 향상 시켰다고도 한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면 간헐적인 금식은 우리 삶을 보다 영리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필자도 금식에 대해 궁금하기도 해서 짧은 기간이지만 경험 삼아 3일간 금식을 2-3번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예상외로 어려웠던 점은 영문을 모르는 아내와 아이들이 왜 밥을 먹지 않느냐며 화가 났느냐, 무슨 일이 있었느냐, 단식 투쟁이냐 등 따지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금식을 하는 중이라고 얘기 했더니 별일 다 보겠다면서 잘 해보라는 표정들이다. 그 다음 참기 어려웠던 것은 굶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들 끼리 맛있는 냄새와 소리를 내면서 음식을 먹는 것이다. 오히려 얼마나 견디나 보자면서 평상 시 보다 더 맛있고 요란스럽게 먹는 것 같이 느껴졌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스스로 선택한 금식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금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특히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 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환자들이 가장 불평하는 것 중 하나가 검사한다고 며칠씩 굶기고 피만 뽑아가서 병이 더 악화됐다는 것이다. 식사 시간에 옆 병상의 다른 사람들이 밥 먹는 것을 보면 더욱 참기가 어려울 것이다. 굶으면서 다른 환자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고문이고, 유혹을 참을 수 없게 되며 더 허기지게 될 것이다.

최근에는 의료계에서도 꼭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금식을 권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스스로 금식의 어려움을 경험이 있은 뒤 필자도 환자에게 가능한 금식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금식이 필요한 검사를 같은 날에 모아서 하게 하거나, 오후에 검사가 있으면 아침 식사는 하게 한다든지 하는 방법을 이용한다. 흔히들 배가 고프면 못할 짓이 없다고들 한다. 따라서 의료진들은 최선을 다해 환자들이 배고파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승훈 을지대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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