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독일 통일 과정을 들어다 보면 자못 흥미롭다. 통일을 연구할 때 많은 학자들은 독일과 베트남, 그리고 예멘의 경우를 사례로서 분석하여 자신의 연구 결과를 뒷받침하는 논거(論據)로 제기하기도 한다. 위의 통일 사례의 공통점은 통일이 당사국의 국내 정치 결과와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국제 정치 역학(力學)이라는 역사적 간섭(干涉)이 존재하였다는 점이다. "국제 정치 역학"의 역사적 추동력은 관련 국가들의 국익에 근거한 협상을 통해 구체화된다. 그러나 "국제 정치 역학"이란 괴물은 통일 당사국에게 정의롭거나 공평한 신의 모습으로 항상 나타나지는 않는다. 독일의 경우 동독 시민들의 정치적 욕구의 지향점이 동독 공산당의 해체와 서독연방에의 가입이었고 이를 통일로 이행시킨 지렛대가 된 것은 당시 서독 콜 수상의 기민하고 영민한(?) 협상 전략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국제 정치 역학"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던 전승국과의 통일 협상이 그것이다. 우선 미국과는 미국이 원한 "통일 독일의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잔류"를 소련의 반대에도 굽히지 않고 약속하였다. 통일 독일의 NATO 잔류는 미국의 통일 동의를 이끌어 내는 중요한 협상 전략이었고 또한 통일 독일의 민주주의적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유의미한 선택이였다.

통일 독일의 NATO잔류는 독일의 전쟁 재발을 우려하는 주변국들을 안심시키고, 나아가 통일 독일의 군사력 규모를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제시하여 영국과 프랑스의 동의를 얻어내었다. 당시 소련의 경제적 상황을 최대한 호기로 삼아 차관 제공 등 경제적으로 협상하여 소련이 동독을 포기케 함으로써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었다. 만약 NATO 잔류를 처음부터 확고하게 밝히지 않고 바르샤바 조약기구나 동독내 소련 주둔군 철수와 연계하였다면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당시 동독내 소련군은 47만 정도의 규모(동독 인민군은 20만)였는데 이들에 대한 평화적 관리(소련으로의 철군)가 선행되지 않았다면 독일 통일은 훨씬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소련의 동독 포기가 독일 통일에 기여하였다. 반면 베트남은 결과적으로 미국이 월남을 포기함으로써 공산화 통일이 이루어진 사례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 닉슨은 월남에서의 철수(정확히는 베트남전쟁으로 부터의 철수)가 불가피하다는 정치적 판단을 하였고 명분 있는 철수를 위해 휴전협상을 추진하였다. 키신저와 레둑토간의 지루한 협상 끝에 파리 평화협상은 성공(?)하였고 이를 근거로 당당하게 온갖 최신 무기를 월남군에게 양도하고 또한 유사시 지원 약속을 앞세워 월남에서의 미군 철수가 이루어졌다. 협상이 노벨평화상을 공동으로 수상케 한 원인(레둑토는 조국이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였고, 키신저는 월남 패망 후 노벨 평화상 반납 의사를 피력하였으나 거부당함)이 되었으나 회담 정확히 2년 후 월남은 수많은 보트피플과 망명 국민을 남긴 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혁명이라는 미명하에 희생된 수많은 국민들도 함께. 두 나라의 통일 원인의 전부는 아니지만, 독일은 소련이 동독을 포기하여 민주주의 국가로 통일하였고, 월남은 미국이 월남을 포기하여 공산주의 국가로 통일되었다. 또한 NATO 잔류가 독일과 유럽 안보 버팀목이 되었고, 월남에서의 미군 철수가 성공적인 파리 평화협상에도 불구하고 공산화로 가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이다. 북미정상회담에 이어 중국이 참가한 가운데 한반도의 휴전이 종전으로 대체되고 이어서 북미간 수교와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월남의 경우처럼 미국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우리의 의사나 한미 상호 방위조약 등과 무관하게 주한 미군 철수도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미국의 입장에서는 가능성 있는 추론이다. 4.27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곧 개최될 예정이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실현이 한반도 통일의 필요충분조건처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북한의 핵무기 폐기는 관련 당사국들의 국익에 우선한 정치적 선택의 하나일 뿐이다. 4.27판문점 선언은 통일로 가는 출발점이기 보다는 남북이 공존하는 가운데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평화로의 이행을 담보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통일을 논의하기에는 이르다는 의미이다. 미국과 동맹국인 한국의 입장에서의 "주한 미군"의 전략적 가치는 통일 이후에도 동북아 세력균형 유지를 담보함으로써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서 한미동맹의 중심축인 "주한 미군"의 거취는 결코 핵무기폐기와의 거래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경고한다. 문병선 서원대 융합보안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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