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에서 마고 마을을 지나 뽀이약 마을 바로 아래 붙어있는 쌩줄리앙(Saint-Julien) 마을은 가로와 세로 길이가 5킬로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고, 포도원 면적도 약 900헥타로 마고 마을의 2/3 수준입니다. 마고와 뽀이약에 있는 1등급 샤또는 없지만, 마고와 같이 쌩줄리앙에는 2등급 샤또가 최대인 5개가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평범한 마고의 2등급 와인들과는 달리, 레오빌(Leoville) 3형제와 뒤크뤼 보까이유(Ducru Beaucaillou)와 그뤼오 라로즈(Gruaud Larose)로 구성된 쌩줄리앙 2등급 와인들은 현재까지도 등급 선정 당시의 명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마고와 뽀이약 사이에 위치한 덕인지, 쌩줄리앙 와인은 마고의 우아하고 섬세함과 뽀이약의 화려하고 강건함의 중용적인 맛을 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작은 자갈 토양으로 이루어진 생줄리앙 동쪽 지롱드 강변에는 4등급 샤또 베이슈벨로 시작하여 뒤크뤼 보까이유와 레오빌 바르똥(Barton), 레오빌 푸아페레(Poyferre), 레오빌 라스까스(Las-Cases)가 나란히 있습니다. 나머지 2등급 와인 그뤼오 라로즈는 서쪽 내륙 맨 아래에 위치하여 모래와 풍적 황토로 구성된 토양에서 다른 2등급 와인과는 달리 마고 스타일의 우아하고 섬세한 와인을 생산합니다.

뽀이약의 1등급 샤또 라뚜르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는 레오빌 라스까스가 쌩줄리앙을 대표하는 와이너리로 한결같이 1등급 와인에 못지않은 훌륭한 와인을 만듭니다. 품질로만 판단하여 1등급 격상을 시켰더라면, 무똥 로칠드가 아닌 레오빌 라스까스가 1등급 샤또가 되었을 거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라스까스는 뽀이약 와인의 중후한 맛이 있으면서도 쌩줄리앙 특유의 적당함을 잘 보여줍니다. 강함과 부드러움의 절묘한 조화를 날카로운 창과 두툼한 방패가 대치하고 있는 듯한 찰나의 미학이 있다고 평해지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알려진 보르도 등급 와인은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을 역임하며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궈냈던 히딩크 감독이 좋아해서 유명해진 샤또 딸보입니다. 딸보란 명칭은 15세기 초반 백년전쟁 시기에 보르도 지역을 통치했던 영국의 전쟁 영웅 딸보 장군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세컨 와인 이름도 총사령관을 의미하는 꼬네따블(Connetable) 딸보입니다. 딸보는 1917년부터 꼬르디에 가문이 소유해 100년이나 가족경영체제를 운영해왔습니다.

읽기조차 어려운 다른 프랑스 와인 이름들과는 달리 부르기도 쉬운 4등급 샤또 딸보는 쌩줄리앙의 1/9에 해당되는 102헥타의 포도원에서 매년 40만병 이상의 와인을 생산합니다. 딸보는 맛으로도 쌩줄리앙답게 산미가 강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파워의 탄닌으로 잘 조화를 이루기에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뽀이약의 린치바쥬처럼 딸보도 메독에서는 매우 드물게 까이유 블랑(Caillou Blanc, 하얀 조약돌)이란 이름으로 화이트 와인을 생산합니다.

쌩줄리앙에는 총 11개의 등급와인이 있는데 이들 11개 샤또가 쌩줄리앙의 전체 와인 생산량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쌩줄리앙 와인의 평균적인 품질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내륙쪽에 위치한 3등급 샤또 라그랑쥬(Lagrange)는 한 때 쇄락했다가 1984년 일본 주류회사 산토리가 인수하면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습니다. 산토리가 투자한 또다른 사또 베이슈벨은 16세기 소유주인 해군사령관에 대한 경의 표시로, 배들이 샤또 앞를 지나칠 때 돛을 내림(Baisse-la-Voile)에서 Beychevelle이란 이름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2016년 보르도 와이너리 투어시 방문했던 쌩줄리앙 샤또는 레오빌 라스까스와 그뤼오 라로즈 2개였는데, 다음 칼럼에서 연이어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신성식 ETRI 미래전략연구소 산업전략연구그룹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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