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공자는 제자들에게 꿈에 대해 물었다. 자로는 3년 안에 큰 나라로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염유는 백성을 풍족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공서화는 종묘 일을 배우며 작은 보필자 역할을 하겠다고 자신의 꿈을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제자 증점에게 공자가 꿈을 묻자, 증점은 매우 부끄러워했다. 연주하고 있던 거문고를 놓으며 그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따뜻한 늦은 봄날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친구들 대여섯 명과 아이들 예닐곱 명을 데리고 목욕을 하고, 기우제 드리는 곳에서 바람을 쐬고 난 후, 노래하며 집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모두 비웃는 증점의 대답에 공자는 감탄하며 "나도 그렇게 하고 싶구나"라고 답했다고 한다. `논어`선진(先進)에 나온 내용이다. 어쩌면 요즘 많이 거론되고 있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1986)에 등장한 소확행은 참으로 단순하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돼 있는 속옷을 볼 때 등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고자 하는 움직임은 스웨덴의 `라곰(lagom)`, 프랑스의 `오캄(au calme)`, 덴마크의 `휘게(hygge)` 등 세계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소한 즐거움은 최근 상영된 `리틀 포레스트`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혼자서 해먹는 소중한 밥 한 끼, 친구들과의 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 어쩌면 이 영화가 10여 년 앞서 제작됐다면 지금과 같은 감동을 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대규모 블록버스터에 밀려 저예산 영화와 단순한 줄거리로 치부되며 영화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메시지를 전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 소녀가 보여주고 있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작은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의 책상에서는 조금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컴퓨터 창을 여러 개 띄워놓은 채 음악을 검색해 틀어놓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이메일도 보낸다. 동시에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고, 컴퓨터에 열어놓은 메신저로는 누군가가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 이 상황의 나는 분명 멀티태스킹에 능한 능력자가 아니라, 미디어 다이어트가 필요한 사람일 것이다.

미디어가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장점도 있지만, 그에 반해 폐해들도 많이 지적되곤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인터넷과 휴대전화, TV, 게임기의 사용시간을 조금씩 줄여보자는 미디어 다이어트의 필요성이 많이 대두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밥을 굶는 금식처럼 일부러 휴대전화와 인터넷, TV를 끊고 생활하는 미디어 금식을 실천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미디어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이 같은 움직임이 작고 소중한 것에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또 다른 움직임을 낳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중국 송나라 학자 소강철(邵康節)은 일찍이 `청야음(淸夜吟)`이라는 시에서 `일반청의미(一般淸意味)`라는 말을 남겼다. 一(한 일) , 般(일반 반) , 淸(맑을 청) , 意(뜻 의) , 味(맛 미) 즉 작고 평범하지만 맑고 의미 있는 것들을 뜻하는 이 시구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보다 더 앞서, 세계 최초의 서사시로 알려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의 이야기에도 이런 대목이 나온다. 불로초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오던 길가메시가 뱀에게 불로초를 뺏기고 절망감에 울고 있을 때, 불로초가 있는 곳을 알려줬던 사람이 나타나 말을 한다. "슬퍼한다고 해서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서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맛있는 것을 먹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거라." 결국 `슬픔은 잊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21세기를 관통하고 있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이 말은 몇 천 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좀처럼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어려운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컴퓨터를 덮고, 휴대폰보다는 가까운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며 그 어려운 일을 해보면 어떨까? 행복은 아주 가까이 있다. 조석연 대전대학교 H-LAC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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