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구속
확진 판정은 우리를 대 혼란에 빠뜨렸다. 결과가 나온 시점부터 대응팀이 구성됐고, 해당 환자와 접촉한 의료진, 주위에 있던 환자 및 보호자를 추적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주변에 있었던 의사, 간호사, 방사선사 등 직원 30여 명이 즉시 격리됐고, 주위에 있던 환자들은 한 병동을 통째로 비워 한 병실에 한 명씩 입실시켰다.
문제는 중환자실이었다. 해당 환자는 이미 중환자실 내 격리실에 있었지만, 다른 중환자들과 의료진의 감염여부가 문제였다. 중환자들을 일반병실로 옮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감염위험이 최고로 고조된 곳에 그대로 둘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일단 최대한 병세가 좋아진 환자는 병실로 옮겨 간호사의 집중간호를 받도록 하고, 해당 환자와 접촉한 다른 환자와 의료진은 집중 관리 대상으로 분리한 후 외부와 격리시켰다.
중환자실 전체가 완전히 고립된 섬이 됐다. 누구든 자유롭게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었다. 15명의 중환자와 그들을 돌봐야 할 의사, 간호사들이 메르스 접촉대상이 돼 중환자실에 갇혔다. 의료진들은 입는 것만으로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방호복과 N95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간호를 시작했다.
`우리는 30분 만에 탈진했다. 샐 틈 없는 방호복 덕분에 온몸은 바로 축축하게 속옷까지 젖었고 N95마스크는 날숨을 그대로 마시게 해 산소부족이었다. 동료간호사들이 하나둘씩 모여 함께 울었다`. 당시 중환자실 파트장의 일기 내용이다. 그때 중환자실의 간호사들은 매일 8시간씩 근무를 해야만 했다. 탈진이란 말이 사치스러울 정도로 최고의 인내를 필요로 했다. 그들은 병원에 갇힌 채 메르스와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임종을 지키기 못한 가족들의 마지막 편지를 대신 전해주던 장면은 지금도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바깥공기와 바람을 살갗에 느끼고 싶다`. 오죽할까. 바깥바람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경험하지 않았다면 모를 일이다. 공감할 수는 있어도, 안다고는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를 한다고는 했지만, 바깥바람을 향한 그리움이 어디까지 사무칠 수 있는지는 정말 알지 못할 것이다. 간호사들 중에는 아기엄마도 있었고, 갓 결혼한 신부도 있었고, 오늘밤 숙제를 챙겨야 할 초등학생 부모도 있었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딸도 있었다.
`오늘 밤은 울지 않는다. 남은 기간 우리 스스로와 메르스로부터 환자를 지켜낼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은 그렇게 메르스와 사투를 벌였다. 모두가 제2의 메르스 환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싸웠다. 힘들고 지쳐 많이 울었지만 서로를 격려하며 버텨냈다. 그리고 마침내 메르스를 이겨냈다. 2주간의 격리 후 외부로 나와 마음껏 바람을 느꼈다. 정말 `아름다운 구속`이었다. 이것이 중환자실 간호사들의 모습이다. 그들에게 한없는 사랑을 보낸다. 김인희 을지대병원 간호부 행정팀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