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구속

3년 전, 온 나라에 메르스 공포가 덮쳤을 때 우리는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었다. 병원은 공포의 대상이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찾아야만 하는 환자들이 있었기에 무거운 책임이 지워져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우리는 강화된 감별조치를 더욱 철저히 시행했다. 만전에 만전을 기했지만 설마설마 하던 일이 우리 병원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환자와 보호자가 서울삼성병원 입원 사실을 숨기고 병원 응급실로 들어온 것이다.

확진 판정은 우리를 대 혼란에 빠뜨렸다. 결과가 나온 시점부터 대응팀이 구성됐고, 해당 환자와 접촉한 의료진, 주위에 있던 환자 및 보호자를 추적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주변에 있었던 의사, 간호사, 방사선사 등 직원 30여 명이 즉시 격리됐고, 주위에 있던 환자들은 한 병동을 통째로 비워 한 병실에 한 명씩 입실시켰다.

문제는 중환자실이었다. 해당 환자는 이미 중환자실 내 격리실에 있었지만, 다른 중환자들과 의료진의 감염여부가 문제였다. 중환자들을 일반병실로 옮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감염위험이 최고로 고조된 곳에 그대로 둘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일단 최대한 병세가 좋아진 환자는 병실로 옮겨 간호사의 집중간호를 받도록 하고, 해당 환자와 접촉한 다른 환자와 의료진은 집중 관리 대상으로 분리한 후 외부와 격리시켰다.

중환자실 전체가 완전히 고립된 섬이 됐다. 누구든 자유롭게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었다. 15명의 중환자와 그들을 돌봐야 할 의사, 간호사들이 메르스 접촉대상이 돼 중환자실에 갇혔다. 의료진들은 입는 것만으로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방호복과 N95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간호를 시작했다.

`우리는 30분 만에 탈진했다. 샐 틈 없는 방호복 덕분에 온몸은 바로 축축하게 속옷까지 젖었고 N95마스크는 날숨을 그대로 마시게 해 산소부족이었다. 동료간호사들이 하나둘씩 모여 함께 울었다`. 당시 중환자실 파트장의 일기 내용이다. 그때 중환자실의 간호사들은 매일 8시간씩 근무를 해야만 했다. 탈진이란 말이 사치스러울 정도로 최고의 인내를 필요로 했다. 그들은 병원에 갇힌 채 메르스와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임종을 지키기 못한 가족들의 마지막 편지를 대신 전해주던 장면은 지금도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바깥공기와 바람을 살갗에 느끼고 싶다`. 오죽할까. 바깥바람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경험하지 않았다면 모를 일이다. 공감할 수는 있어도, 안다고는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를 한다고는 했지만, 바깥바람을 향한 그리움이 어디까지 사무칠 수 있는지는 정말 알지 못할 것이다. 간호사들 중에는 아기엄마도 있었고, 갓 결혼한 신부도 있었고, 오늘밤 숙제를 챙겨야 할 초등학생 부모도 있었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딸도 있었다.

`오늘 밤은 울지 않는다. 남은 기간 우리 스스로와 메르스로부터 환자를 지켜낼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은 그렇게 메르스와 사투를 벌였다. 모두가 제2의 메르스 환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싸웠다. 힘들고 지쳐 많이 울었지만 서로를 격려하며 버텨냈다. 그리고 마침내 메르스를 이겨냈다. 2주간의 격리 후 외부로 나와 마음껏 바람을 느꼈다. 정말 `아름다운 구속`이었다. 이것이 중환자실 간호사들의 모습이다. 그들에게 한없는 사랑을 보낸다. 김인희 을지대병원 간호부 행정팀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