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독일인들을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필자는 통일을 이룬 독일인들에게 통일에 가장 기여했던 인물들을 열거한다면 누구이겠는가라는 질문을 하였다. 독일인들의 대부분은 고르바쵸프와 콜 총리를 언급하였다. 그러면서도 꼭 함께 거론하는 인물이 있다. 그것은 아버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마샬플랜을 통해 서독을 경제강국으로 부상시켰다. 서독은 `나토`라는 안보 우산 속에서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 냈다. 미국의 강력한 뒷받침을 통한 정치·경제적 자신감은 반세기 후 독일 통일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독일 통일과정에서 부시 대통령의 가장 큰 역할은 독일 통일과 유럽 통합을 통한 탈냉전 질서를 재편하였다는 데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 통일이 임박했을 때 가장 중요한 난관은 영국·프랑스·소련 등 전승국들의 반대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인 1989년 12월 부시 대통령은 고르바쵸프 서기장과 몰타 정상회담을 통해 독일 통일에 대한 고르바쵸프의 생각이 부정적이라는 점을 감지하였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직후 이어진 나토 정상회담에서 독일 통일이 민족 자결권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고 통일이 유럽의 안정을 위해 평화롭고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였다. 1990년 2월 부시 대통령은 콜 수상을 미국으로 초청(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하여 독일 통일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지 의사를 재확인하였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은 독일 통일에 대해 가장 반대했던 대처 영국 수상을 설득하는 임무를 자임하였다.

미국은 공산권 붕괴의 큰 시대적 흐름을 읽었고 하나의 독일이 세계 평화와 유럽 통합에 기여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1980년대 말 상황을 되돌아보면서 새삼 지금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는 변화의 흐름을 절감하게 된다. 물론 당시의 상황이 지금과는 다르지만 강대국의 역할, 지도자의 현명한 판단, 도전을 헤쳐 나가는 통찰력과 상상력은 세계 역사를 바꾸는 근본적인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4.27 남북정상회담은 1980년대 말 전개되었던 탈냉전의 종지부를 찍는,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다. 이념과 체제, 전쟁과 대결의 흐름을 평화와 공존, 화해와 협력이라는 흐름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3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역사적 가치와 시대적 소명에 부합했던 정상회담이 이번 정상회담일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더욱 많은 노력이 요구되었던 회담이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정전체제를 종식시키는 바로 문 앞까지 도달했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 못지않게 우리를 고무시키는 것은 곧 있을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다. 부시 대통령이 고르바쵸프를 만나 독일 통일에 대해 나누었던 진지한 대화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이루게 될 대화의 내용이 주목된다. 아직 모든 것을 낙관하기에는 이르지만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 전 북미간 접촉의 내용, 북미 정상회담이 5월 중 개최될 수 있다는 내용, 그 장소가 판문점이 될 수 있다는 내용 등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기대를 가능하게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지원으로 독일이 부강하게 되었듯이 6.25 전쟁이후 우리가 다시 설 수 있게 된 것은 미국의 역할이 크다. 미국과의 동맹으로 한반도 안보가 뒷받침되고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하였다. 이제 한국과 미국은 대한민국의 평화지키기(peace keeping)를 넘어 한반도의 평화만들기(peace making)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려 하고 있다. 오랜 정전체제를 끝내고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면서 한반도와 전 세계의 평화를 만드는 문 앞에 서있다. 우리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마련한 역사적인 순간들이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으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부시 대통령과 콜 총리는 서로를 "나의 친구"로 불렀다. 두 정상 간의 신뢰는 독일 통일을 이뤄냈다. 반세기 넘게 역사와 가치를 공유해온 한국과 미국이다.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역사적인 합의를 이루어 나의 친구, 나의 민족이 한 자리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장면을 기대한다. 그래서 한반도가 더 이상 전쟁이 없는 땅, 또 다시 하나되는 공동 번영의 발원지가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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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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