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그 시대의 경제와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에 의해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절제, 균형, 대칭이 최고의 미적 기준이었던 고전시대와 그런 따분한 조건들로부터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했던 낭만시대, 그리고 세계 제 1차 대전과 제 2차 대전을 치룬 후의 20세기의 예술의 가치와 철학은 확연히 달랐다. 프로이드나 융, 니체와 같은 인물들의 등장과 함께 엄청나게 발전한 철학과 심리학, 두 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처참히 무너진 개인의 이상과 꿈 그리고 희망, 무엇보다 산업화로 인한 급격한 생활의 변화로 `한 시대의 거울`인 예술은 표면적인 아름다움과 감동보다는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육체와 영혼을 어루만져 줄 수 있고 다시 삶을 일으킬 수 있는 깨달음과 지식을 추구하게 된다. 나 개인 뿐 아니라 사회가 같이 발전해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으로 정치적이고 사회 참여적인 예술이 예술 표현의 방향이자 중심이 된다.

사회의 어둡고 암울한 면들을 그로테스크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은 어두운 무지의 세계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교육, 지식 그리고 깨달음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알파벳을 익히고 윤리적 이슈들을 재미있게 다루는 `세사미 스트리트`는 미국의 1970년대에 글을 깨우치지 못해 학교생활과 학습에 흥미를 잃은 흑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교육과 상업의 목적을 동시에 달성한 대중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송창식의 노래 `가나다라`의 가사를 살펴보면 가나다라마바사, 태정태세문단세, 나무아미타불 등의, 서로 연관성은 없지만 매우 교육적으로 다양한 정보를 다루고 있다. 이 또한 한국어 발음이 서툴렀던 재일교포 3세들의 한국어 교육을 위해 만든, 한국적인 대중가요이다. 20세기 예술 작품답게 연관성은 없어도, 연속적으로 나열된 가사는 환상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 이미 알려진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또 다른 예로 들 수 있는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은 지리적인 사실 뿐만 아니라 독도가 대한민국의 땅임을 다짐하고 호소하는, 대중을 일깨우기 위한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신중현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름다운 강산` 역시 제 3공화국 당시 권력자를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라는 압력을 거절하며 권력자 대신 아름다운 우리 대한민국을 찬양하는 노래는 만들 수 있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특정인이 아닌 우리 민족 전체에게 바치는 그런 의미가 담겨있는 역작인 것이다. 1980년대 초에 유행했던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또한 대한민국을 선전하는(권력에 이용당하기도 했다는 면에서 선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강한 메시지를 담은 곡이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라는 사회적 인식을 목표로 한 대중 `건전 가요`이다.

이처럼, 사회, 문화, 예술의 중심이었던 신이 모든 작품들의 주제였던 바로크시대를 거쳐 자연을 주제로 한 풍경화가 대세를 이루었던 19세기를 지나, 전쟁 이후 사회 체제의 변화와 정신세계의 연구와 심리학의 발전 등으로 인한 생활양식과 인식의 변화가 낳은 예술은 풍자적이면서도 인간 사회를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인식과 관심을 가진 예술이 되었다.

<조윤수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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