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4·27 남북정상회담을 놓고 분란이 일고 있다. 홍준표 대표 등 지도부가 연일 회담 성과를 깎아내리는 데 주력하자 지방선거에 출전하는 주요 광역단체장 후보들을 중심으로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민심의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양측의 시각차는 뚜렷하다. 이런 간극이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줄 것은 자명해 보이지만 출구는 깜깜하다. 더욱이 선거 이후 책임론과도 연계된 부분이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듯하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한국당 지도부의 험담과 독설은 날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홍 대표는 회담 당일부터 `김정은과 문재인 정권이 합작한 남북 위장평화쇼`, `김정은이 불러준 대로 받아 적은 것이 남북정상회담 발표문`이라고 폄하했다. 기자회견에서는 "정상회담 합의 이면에 북한 김정은과 우리 측 주사파들의 숨은 합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도 했다. 엊그제 창원에 가서는 "다음 대통령은 김정은이가 될지 모르겠다"며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고 독설을 날렸다. 한국당이 판문점 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 동의를 적극 반대하는 것은 지도부의 의중이 짙게 깔려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당과 홍 대표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도대체 홍 대표 어느 나라 정치인인지 모르겠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급기야 당 내부의 비판과 반발도 제기되고 있다.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를 비롯해 유정복 인천시장 후보, 남경필 경기지사 후보, 김태호 경남지사 후보 등은 지도부의 막말이 국민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자제를 요청하고 나섰다. 4선의 강길부 의원은 아예 홍 대표 사퇴를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지도부에 각을 세우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우선은 선거에 역풍이 불 것을 우려한 행동 같지만 국민들의 보편적 인식과 동떨어진 지도부의 행태에 대한 반발과 당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홍 대표 등 지도부의 정상회담 폄하는 나름 이해가 된다. 제1야당이자 보수정당이 남북관계의 불가측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동안 남북합의가 제대로 지켜진 적이 거의 없다는 점도 이유로 꼽을 수 있다. 판문점 선언이 한층 진일보한 것은 분명하지만 핵 폐기에 대한 보장이 미흡한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북미회담이란 큰 산도 남아 있다. 여기에 지방선거가 목전이다. 선거결과에 정치적 명운을 걸고 있는 홍 대표로선 보수세력 결집을 위해 남북정당회담의 허점을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4.27 남북정상회담을 복기해 보면 마치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과도 같은 느낌이다. 두 손을 굳게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든 남북정상, 도보다리 장시간 밀담(?) 등의 장면은 사전 각본이 없었음에도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어떤 명감독이라도 두 정상이 즉석에서 연출한 이들 장면처럼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장면을 만들기는 쉽지 않으리라. 회담이 끝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감동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 것은 이들 장면들이 허구가 아니라 실제 일어났던 일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과 전세계 유수 언론들이 북한의 핵 무장과 호전성, 열악한 인권상황에도 불구하고 남북정상회담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만큼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갈망과 기대가 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정치는 민심을 읽는 일이다. 국민이 무엇을 바라고 원하는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정책으로 엮어내는 것이다. 정당이나 정치인이 여론과 동떨어진 정치를 하면 가차 없이 퇴출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정책을 통해 여론을 움직이고 지지세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 홍 대표 등 한국당 지도부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어깃장과 독설이 아니라 민심을 제대로 읽고자 하는 열린 자세가 아닐까. 김시헌 천안아산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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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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