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을에 1986년 입주하여 30년 넘게 살았다. 이 마을의 이름은 도룡동이다. 연구단지특별법이 적용되어 집을 짓는 데는 매우 까다로운 건축조건이 적용되었다. 공공건물은 5층 이상 지을 수 없었고 개인 주택은 2층 이상은 못 짓고 투시담이라야 했고 정원에는 나무가 어느 정도 이상 있어야 했다. 부동산 투자가치를 고려하면 그런 조건들은 매우 불리한 것이었고 그래서 이곳은 상당히 오랜 기간 공터로 남겨진 집이 많았다. 주변은 논과 밭 천지이고 자가용도 시내버스도 없고 택시도 들어오려 하지 않아 각 연구기관에서 운영하는 출퇴근버스나 업무용버스운영이 끝나면 갇혀있기 십상이었다. 와이셔츠의 칼라는 일주일을 갈아입지 않아도 깨끗했다. 대보름이면 공터 밝은 보름달 아래서 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 쥐불놀이를 하였다.

이곳에 10년 20년 지나면서 입주자들이 늘어가며 각자 지은 집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대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거지역으로 발전하였다. 대덕초교 사거리에서 표준과학연구원쪽으로 난 도로는 길가와 중앙 화단형 중앙분리대까지 3줄로 커다랗게 자란 가로수가 우거진 것이 매우 아름다웠다. 특히 4-5월쯤에는 나무에 새순이 돋아나는 것이 생명의 기쁨과 행복을 알려주었다. 아름다운 가로수 길은 충남대 후문을 지나 유성에 이르기 까지 이어졌다.

도룡동은 대전 엑스포 즈음해서 변화의 급물살을 탔다. 둔산 신도시가 개발되고 갑천대교가 생기고 유성을 거치지 않고도 시내로 나갈 수 있는 길이 뚫렸다. 매일 새롭게 변하는 지형에 그곳에 사는 우리도 길을 잃을 지경이었다. 우성이산 자락에 대덕과학문화센터가 생기면서 동네 지하수가 말라버렸다. 북대전 IC가 생겨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화단형 중앙분리대가 횡단보도, 유턴 자리 확보를 위해 줄어들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때마다 도로 양옆에 30년 자란 아름드리 가로수가 잘려 나가거나 어린 가로수로 대체되니 마을은 그 아름다움을 잃어갔다. 대덕초등학교 네거리 모퉁이에 있었던 대덕단지관리본부가 이전하고 그 자리에 11층 건물이 들어섰고 그 맞은편에 다시 고층 건물이 들어섰다. 주공아파트 단지, 타운하우스, ETRI 기숙사, 매봉산 자락에 위치한 KIT아파트들이 차례로 12층 아파트로 재건축에 들어갔다. 공동관리 아파트도 조만간 재개발되어야 하고 그 외에도 많은 건물들이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대전시는 이미 아파트 초과공급 상태라는데 계속 녹지공간을 없애고 고층아파트를 지을 생각부터 하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어떤 이가 도룡동 중부주거지에 식당을 운영하려 했고 원룸이 몇 채 생기면서 난개발을 우려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이 지역을 제1종 전용주거지역으로 만들었다. 최근에는 대덕과학문화센터 자리에 19층 오피스텔을 지으려는 계획을 과학자들과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막았고 현재 매봉산 지역에 아파트를 지으려는 계획에 대해서도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주민들 중 일부는 재산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에 찬성하는 사람도 생기고 있으나 아직도 대세는 이 지역의 고유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바보들이 대다수다. 이 바보들이 언제까지 대세를 이루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이 대세가 뒤바뀌면 대전시가 아무리 노력해도 쾌적한 과학도시로서의 대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대덕연구단지는 과학기술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의 과학기술 성지로서 100년 200년 후 우리 후손들에게 대전을 대표할 역사적 문화적 유산으로 물려줄 가치가 있는 곳이다. 국책연구기관들이 집중된 우리나라의 성장 동력이자 국가보안시설이라는 특성이 있는 만큼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것이 마땅하다. 국가와 대전시 그리고 지역의 연구기관들은 대덕연구단지를 단지 부동산 개념으로만 따져 당장 수익사업에만 매몰될 일이 아니라 쾌적한 연구 환경과 주거환경을 가진 창의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과학도시의 면모를 갖출 수 있도록 종합계획에 따라 발전시킬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광화 전 기초과학지원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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