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산 대자연 속에 고즈넉하게 들어서 있는 문화재 향기에 매료돼 정처 없이 발길을 내딛다 보면 어느새 아름드리 삼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깊은 산속 길로 접어든다. 한 시대를 풍미하거나 평범하지만 자기 나름대로 멋진 삶을 살다 간 수많은 혼백이 깃든 비석이 순례자의 길을 따라 길가에 오밀조밀하게 지천으로 세워져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숱한 풍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외롭게 산속 한 자락에 우두커니 서 있는 빛바래고 이끼가 잔뜩 끼어있는 비석을 보노라면 이 땅에서의 우리네 삶을 한 번쯤은 되돌아보게 된다.

이곳에 들어서면 "해 저문 가을 들녘에 / 말없이 누워 있는 볏단처럼 / 죽어서야 다시 사는 / 영원의 의미를 깨우치게 하소서!"라는 이해인 시인의 시 `사계절의 기도`의 한 구절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예로부터 일본 간사이 지역 고야산 순례자의 길 `오쿠노인(奧の院) 참배 길`은 언제 가봐도 인생의 마무리를 위해 달려온 순례자들로 북적인다. 고야산 입구 이치노하시(一の橋)에서 진언종의 창시자 고보대사 구카이(弘法大師 空海)의 사당에 이르기까지 2㎞에 달하는 오쿠노인(奧の院)은 고야산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라 할 만하다. 이 참배길은 일본인들이 본인과 친지들의 유골(망자)을 고보대사의 묘지 가까이에 두면 극락왕생한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레 형성되면서 일본 최고의 명당으로 자리 잡았다. 이 삼나무 숲길을 참배하는 사람들을 고보대사가 먼 옛날에 죽은 게 아니라 무덤에서 미륵(彌勒)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안식하고 있다고 여기기에 수많은 망자(亡者)와 산 자들이 이 참배 길을 찾는다. 특히 11세기 경에는 일본열도에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의 유골이나 머리카락을 고보대사 무덤(사당) 가까이에 안치해 두는 게 큰 유행이었다. 그러한 풍조가 오늘날까지도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줘 오쿠노인 참배 길옆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묘비(무덤)들이 들어서게 됐다.

이곳에는 일본 전국시대(1467-1568년)에 일세를 풍미하던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의 영웅호걸 무덤(묘석)도 들어서 있다. 아울러 일본 굴지의 대기업 파나소닉의 가족묘도 들어서 있다.

이 길을 거닐다 보면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지론을 견지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야 한다"고 여긴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그리고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등 전국시대 전후의 영웅호걸 3인방의 호쾌한 음성이 메아리쳐 가슴 깊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오쿠노인 참배 길을 따라 발길을 옮기니 우선 수백 년 이상 된 삼나무들이 참배 길옆에 거대한 숲을 형성해 그 위용에 압도당하고 만다. 삼나무의 수령을 적어놓은 푯말도 보이는 데 500-600년 표식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길 양옆으로는 오랜 풍상을 겪어오면서 이끼로 뒤덮인 묘석에서부터 주먹 정도 크기의 앙증맞은 묘석에 이르기까지 천태만상의 묘석으로 이뤄진 산림공원 공동묘지를 이루고 있다. 묘비 사이를 걷고 있다고 생각하면 왠지 으스스한 느낌만이 들 거 같은데 그러한 기분이 거의 들지 않는다.

곳곳에 있는 빨간색 가슴받이를 둘러매고 있는 보살상, 모자를 쓰고 있는 보살상 등 귀엽고 재미있게 느껴져 참배 길의 엄숙함을 순간 무너트린다. 그 앙증맞은 보살상 밑에는 관광객이 던지고 간 듯 동전들이 수북하게 놓여있다. 여러 면에서 엄숙하고 강한 무게감이 엄습해 오는 오쿠노인 참배 길을 걷노라면 죽음에 대한 암울한 생각보다는 삶에 대한 강한 애착과 지금 이 순간 살아 숨 쉬며 걷고 있기에 감사하기 그지없다. 신수근 자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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