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 합의문을 발표했다. 두 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핵 없는 한반도 실현, 연내 종전 선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성 설치, 이산가족 상봉 등을 천명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한반도에서 분단 70년을 살고 있는 한민족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국내외 수천 명의 언론인들이 이날의 감동적인 역사를 취재했다.

판문점 선언은 이제 남과 북의 평화적 통일의 대장정을 가기 위한 노둣돌 역할을 해야 한다. 4.27 선언문에 통일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남과 북의 평화 정착과 한반도 비핵화가 통일을 향한 대전제라는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중요한 것은 4.27 판문점 선언이 남북 평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통일에 대한 건전한 꿈을 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평화가 분단의 고착화로 귀결된다면 그 평화의 가치는 반감되기 때문이다.

통일에 대한 논의는 사실 남북 분단 이후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모두가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남과 북은 통일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이용해 왔다. 한 시절, 남에서는 군사독재의 체제 유지를 위해서, 북에서는 개인우상의 체제 강화를 위해서 통일 문제를 이용해 왔다. 남한에서는 군사독재가 사라진 뒤에도 통일 문제가 민족의 번영과 발전을 위한 아젠다보다는 정치적 이슈로 등장해 왔다.

가령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두고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극과 극의 평가를 내놓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적, 민족적 사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비판의 정당성과 진정성이다. 북한과의 화해 통일을 지향하는 것에 대한 설득력 있는 비판을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선전선동을 위한 근거 없는 주장이 난무했다는 점이다.

이번 판문점 선언과 관련해서도 각 정치 집단들의 논평은 각양각색이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역사적인 거사로 극찬을 하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일시적인 판문점쇼에 불과하다고 폄훼했다. 다른 군소야당들도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뻔하고 기계적인 논평을 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과연 통일이라는 민족의 대과업이 이처럼 정치적 입장에 따라 극단적으로 평가받아도 되는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진정으로 민족과 국가를 생각하는 정치 집단이라면 정치적 이해관계보다 민족적, 국가적 대사로서의 통일을 앞세워야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앞세워서 통일을 논의하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자칫 그런 논의는 무력통일론이나 통일무용론으로 나갈 가능성마저 있기 때문이다.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적어도 평화 통일에 대한 큰 틀에서는 동의를 하고, 그 디테일한 부분에서 비판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물론 판문점 선언이 있었다고 해서 곧바로 통일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통일을 꿈꾸는 일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꿈은 현재 혹은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남과 북이 대립과 분단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들이 화해와 통일의 꿈을 꾸어야 하는 것이다. 단언컨대. 통일은 꿈꾸는 사람의 일이다. 하여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어느 어처구니 `있는` 꿈에 동참해볼 일이다.

"155마일 휴전선을 해 뜨는 동해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오르다가/ 푸른 바다가 굽어보이는 산정에 다달아 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땅 한 삽/ 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땅 합 삽씩 떠서/ 합장을 지내는 꿈,/ 그 무덤은 우리 5000만 겨레의 순례지가 되겠지/ 그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다 보면/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이 제대로 돌아/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문익환, `꿈을 비는 마음`에서) 이형권 문학평론가·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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